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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프루스트를 읽다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성간의 사랑의 정의를 곱씹어 보게 된다.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 혹은 행위는, 상호적이고 서로 이해하지 못해 갈등도 있다. 구름 속으로 해가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사랑의 주기도 쨍했다, 흐렸다, 하는 게 일반적인 게 아닌가.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1>도 사랑 이야기이다. 즉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이번에는 화자가스완과 오데트의 딸, 질베르트를 짝사랑하는 감정을 철학적으로 풀어놓는다. 질베르트는 화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질베르트의 역할은 화자한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지속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화자한테 질베르트는 사랑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사랑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에 대한 담론을 끌어낸다. 스완의 사랑이 질투로 수렴할 수 있듯는, 격정이라면 화자의 사랑은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한 사랑의 슬픔이다. 여기서 부재는 실제 대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신적 부재이다. 어찌보면 모두가 앓고 있는 증상일지 모른다. 사랑해서 결혼한 커플조차도 외롭다는 말을 종종 한다. 둘이 있어도 외로우면 혼자일 때, 외로운 거 보다 더 비참하단 말을 자주 듣는다. 사랑의 본질은 상호적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재하는 대상이 있어도 늘 그 대상은 부재하는 게 사랑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동안 아주 단순한 사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사건에도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곤 하는데, 사실 사건 자체에는 그만한 중요성이 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뭔가 우리 마음 속의 불안정한 현존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미 사랑은 우리 마음을 떠나고 없다. 사실 사랑에는 지속적인 고통이 따르는 법이라 기쁨이 이 고통을 완화하고 잠재적인 것으로 만들며 유예하기도 하지만, 매 순간 언제라도 우리가 바랐던 것을 얻지 못하면 이 기쁨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끔찍한 고통으로 바뀐다."(273)
아멘-하고 외치고 싶은 구절이다.ㅎ
우리는 다각형의 관계를 맺고 있어서 관계에서의 중요성의 불균형을 생각해야한다.
"내게 있어 질베르트의 중요성, 그녀에게 있어 나의 중요성,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그녀의 중요성 사이의 불균형도 고려해야 했다. 만약 이런 불균형을 빠뜨린다면, 내 친구가 단지 내게 상냥하게 대한 걸 가지고 그녀의 열정을 고백한 것으로 오해하거나, 또는 나 자신의 기이하고도 비열한 행동을, 자신의 아름다운 눈길을 향한 소박하고도 우아한 동작으로 그녀가 이해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281)
한편으로 이런 불균형을 못 알채고 오해가 있어야 사랑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은 자신한테 호감을 보이는 이한테 호감을 갖기 마련이니까, 정확한 계량으로 상대의 호감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사랑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을 거 같다.
짝사랑을 하면서, 즉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견딜 수 있는 이유를 프루스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건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짧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어느 날엔가는 다시 만날 걸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곧 이루어질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유예되는 이런 만남에 대한 나날의 몽상이, 질투가 따르는 만남에 비해 어느 정도는 덜 고통스럽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다시 본다는 소식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나날이 미루는 것은 우리의 이별이 야기하는 그 견딜 수 없는 불안의 끝이 아닌, 어떤 돌파구도 없는 감동이 재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런 만남에 비해, 현실에서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여인이 몽상 속에서 당신이 홀로 있을 때 사랑을 고백하며, 몽상과 더불어 마음대로 완성할 수 있는 그 온순한 추억이 훨씬 좋지 않은가! 우리가 욕망하는 말을 마음대로 구술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냉담함과 느닷없는 격렬함을 감수해야 하는 여인을 상대로 하는 유예된 만남보다, 우리가 욕망하는 많은 것들을 조금씩 섞어 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달콤하게 만들어가는 추억이 훨씬 좋지 않은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는, 망각이,(...)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안다. (...)내가 좋아한 것은 바로 미리 행해진 이런 망각, 그 아늑한 부드러움이었다."(339-340)
프루스트교에 따르면, 짝사랑을 마음껏 하시오. 사랑에서 권력자는 사랑을 받는 이고 사랑을 하는 이는 무기력한데 짝사랑에서는 짝사랑을 하는 이가 신God이니, 되시겠다. 신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프루스트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