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특이한 영화다. 줄거리는 이렇다. 파리에 아는 이 하나 없는 한 커플이 있다. 남자는 밤에 택시 운전을 하고 여자는 남자와 낮을 함께 보내고 밤에는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그러다 남자의 택시를 낮에 운행하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난다. 여자는 밤과 낮을 채워줄 두 남자와 시간을 보낸다. 여자는 두 남자를 동시에 똑같은 강도로 사랑한다고 한다.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가 있다. 이 소설에서 여자는 두 남자와 동시에 결혼을 한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두 남편 모두한테 완변해야할 것. 즉 여자한테 두 남자를 허용하지만 아내라는 사회적 역할을 완변히 수행하는 걸 묘사한다. 그래서 남자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자. 남자가 여자한테 투영하는 판타지가 심하다. 반면에 <밤과 낮>은 그런 판타지는 당연히 없다. 여성감독의 시각이므로. 두 남자 모두 여자한테, 이상한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다. 밤과 낮에 잠도 안 자고 두 남자를 만나는 게 비현실적이다. 욕정에 눈 먼 여자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저 체력이 어디서 나오지...?하는, 아주 현실적 의문이ㅋ 여자는 행복이란 게 어떤 구체적이거나 말한다고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 행복하다면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두 남자가 물리적 구속을 원할 때, 여자는 두 남자를 떠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공감은 0%였다. 너무나 영화 속 이야기 같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집에서 온 소식>
감독이 뉴욕에 체류하면서 찍은 뉴욕의 풍경이 스크린에 전개되면서 집에서 엄마가 보내온 편지가 보이스오버로 나오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롱테이크로 프레임을 마치 사진처럼 구성하는데, 완전 내 취향의 프레임 구성이 영화 내내 계속된다. 뉴욕 풍경을 걷거나 버스, 지하철, 배를 타고 찍었다. 그냥 찍는 거 하고 작품이 될 수 있는 건 시선의 문제인데 대표적으로 지하철 장면이다. 직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지하철 문이 열렸을 때, 역 이름을 잡아내는데 "New York"이란 글자를 잡아내고 다음 장면에서 To Kin"이란 절묘한 프레임을 사용한다. 카메라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카레라에 어떤 걸 담을 지 결정하는 건 카메라 주인만이 할 수 있고 그 결정적 시선이 바로 예술이다.
음악 대신 지하철의 소음, 차소리 등이 정말 날것 그대로 담겨있다. 풍경은 주로 스산한데 이른 아침의 거리와 낡은 콘크리트벽들을 쭈욱 트레킹해서 그렇다. 횡단보도 풍경이나 지하철 역에서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도 멀리서 거리를 두고 있어서 혼잡 속에 집 떠나온 어떤 이방인의 심정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배를 타고 멀어지는 뉴욕시티를 담았는데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갈매기들이 프레임 안을 들어왔다 나갔다한다. 흐린 날이라 마치 흑백처럼 뉴욕시티의 마천루가 멀어지면서 영화가 끝이 나는데 꼭 그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면서 꼭 우울하지만은 않은 멜랑콜리를 선사한다.
보이스오버로 나오는 엄마의 편지는 늘 딸의 안부 걱정이고 늘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시종일관 스산한 풍경과는 대조이다. 엄마의 편지가 없었다면 뉴욕은 황량한 황무지같지 않았을까, 싶다. 왜 감독이 스산한 풍경 속에서 늘 비슷한 내용의 엄마의 편지를 읽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