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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영화가 벌써 몇 편이나 만들어진 걸 어제 검색으로 알았다. 스티브 잡스가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을 꼽으라면, 사실 하나도 없다. 나는 그 흔한 아이팟도 사용 안 해봤다. 애플스토어 가면 이뻐서 침을 좀 흘리기는 했지만 나는 심한 기계치라서 유저프렌들리한 제품이 좋다. 어제 영화를 보면서 그가 회자 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봤다. 그는 사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일 뿐이다. 개인적 삶의 굴곡을 딛고 일어난 영웅이 되기에 그는 지나치게 자본주의에 몰입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를 영웅화하지 못해 안달난걸까. 그와 일했던 이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너는 개X끼(asshole)야. 재능과 인품을 갖춘 사람도 많아."하고. 즉 스티브 잡스는 분명히 경영자로서는 탁월하다. 디자인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으니. 하지만 그의 인품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좋지 않는 듯하다. 오기와 성취욕으로 뭉쳐있고 친딸의 양육도 마지못한 후원자처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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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보다는 시나리오 작가가 더 회자되는 영화도 드물것이다. 이 영화 시나리오는 아론 소킨. <머니볼>, <소셜 네트워크>의 작가. 대충 비슷한 느낌이다. 영화가 스티브 잡스를 영웅화 하기보다는 개인사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상으로 느껴지는 잡스는, 개인사에서도 경영자의 마인드로 접근한다. 뒤늦게 자신의 딸이 있다는 걸 안 후, 잡스의 태도는 중요한 결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배제되었기에 딸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을 닮은 딸과 잠깐씩 만나면서 딸한테 끌리지만 자신의 원칙을 버리지 못한다. 부녀관계에서도 잡스는 자신이 먼저였다. 영화는 이런 묘한 분위기를 잘 잡아낸다. 급박한 순간, 밖에서는 세계로 내보낼 프리젠테이션 준비가 한창인데 잡스는 자신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딸의 태도에 출렁인다. 뭐든 수치와 데이터로 말하고 철저한 실리주의자가 보이는 틈을 건조하고 긴장감 있게 잘 잡아낸다. 극적 긴장감은 주로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 일어나고 이때 사용되는 음악 역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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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니 보일 감독은 어느 순간에 스케일에 치중하면서 자꾸 산만하게 하는 화면을 구성한다. 감각적이긴 한데 대니 보일 감독은 심리를 잡아내는 연출에는 좀 잼병인듯. 아론 소킨과 다른 감독의 조합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된다. <머니볼>이나 <소셜 네트워크>가 개인의 공허한 심리를 잘 포착해서 보고 나면 인물이 느낄 황량함이 전해져 여운이 꽤 오래 남는 영화다. 이 영화는 잡스와 딸의 화해를 마지막에 담아내고 있지만 따뜻하지도 인상적이지도 않다. 물론 아론 소킨은 아마도 따뜻함을 추구하진 않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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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보고 나면 스티브 잡스의 영웅담도 아니고 외로움도 아니고 피도 눈물도 없는 성공지향주의자의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애플을 앞으로도 쓰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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