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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도 잉글랜드 왕과 스코틀랜드 왕의 땅따먹기 역사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역사적 사건이란 소소한 일상이 아니라 욕망으로 수렴되는 경쟁의 이야기이다. 스코틀랜드의 넒은 평원, 그 뒤로 솟아있는 산봉우리들, 그리고 자욱한 안개가 중요한 미장센이다. 평원을 차지하고 싶은 인간은 산봉우리들을 넘어야하고 그 과정은 두터운 안개 속을 걷고 달리는 거 같다. 맥베스의 불안을 담는 방식은 아주 고혹적이다. 인물들이 욕망으로 갈등하며 대화할 때 클로즈업으로, 게다가 핸드핼드로 담고 욕망으로 가득 차 고뇌할 때는 실내등 실외든 덩그러니 인물을 혼자 배치하고 카메라는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멀리서 인물을 담는다. 잦은 클로즈업과 롱쇼트의 변주는 그 자체만으로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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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이 계속 연상된다. <란>이 성 쟁탈전을 화려한 스펙터클로 규모에 방점을 두고 좀 거칠게 담았다면 <맥베스>는 왕위 쟁탈전을 소규모로 묘사하는 대신 디테일을 좀 더 자극적으로 담는다. 나는 이런식(칼로 사람을 베고 피가 솟구치는)의 표현법에 거부감이 있지만 시적이고 추상적인 대사들 사이에 고강도 액션이라니, 아무도 지루하다고 하진 않을 거 같다. 게다가 후반부에서 붉은 빛을 사용해서 전투씬이 실루엣으로 드러날 때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다. 영국 영화들은 어쩌면 이렇게 액션씬을 고급지게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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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의 불안에 대한 고찰을 좀 해 보면, 맥베스는 왕이 될 거라는 말은 믿는다. 말은 특징이 있다. 한번 내뱉고 믿기 시작하면 거짓과 사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거짓도 참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맥베스는 이걸 증명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들은 말을 믿게 되면서 신념이 생기고 행동을 하는 강한 추진력을 얻는다. 그리하여 그는 왕을 죽이고 왕이 된다. 피로 자리를 쟁취한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피는 피를 부른다는 만고진리를 무시할 수 없기에 불안은 맥베스의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맥베스란 인물의 주요한 특징인데 이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묘사하기에, 세익스피어가 수 세기가 흘러도 그 힘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는 것일터.

 

맥베스가 자신의 성취에 만족한 인물이었다면 잠시나마 즐거움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또 다른 왕위 찬탈을 노리는 이한테 피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자신이 갖지 못한 힘 또는 권력에 대한 의지다. 욕망의 문제이기도 한데 욕망하는 자한테는 반드시 불안이 따르니 욕망하지 않는다면 불안도 없을까. 갑자기 맥베스는 아주 도덕적 인간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욕망만 가득하고 불안이란 감정이 뭔지 모르는 정치인들로 가득찬 나라에 살고 있다보니, 맥베스는 적어도 선과 악에 대한 기준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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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에 이어 마이클 패스빈더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인공인데 나는 안면인식 장애가 있어서 마이클 패스빈더가 아주 새로운 사람처럼 보였다. 마이클 패스빈더의 연기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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