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 영화는 처음인데 <아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밥 먹고 나서 밥상 앞에서 트림하고 이를 쑤시는 아내. 살갑기는 커녕 쌀쌀맞은 아내가 있다. 남편이 다음에 취할 내용은 무엇이겠는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멜로 드라마의 서사란 매체가 뭐든 고전이든 현대극이든 대동소이한데 다른 점은 표현 방식이다.

 

아내와 대비되는 회사 타이피스트 여직원. 미망인으로 고전음악을 듣고, 전시회를 보며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사는 것같이 보인다. 이런 착각을 일으키는 주된 이유는 공간에 있다. 고상해보이는 여인이 집안에서 어땠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집이란 공간은 너무나 편안하고 친숙해서 막 트림하는 공간인데 문득 그 익숙한 공간이 남루해보이고 정없어지는 때에 다른 공간에서 사는 것 같은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아마도 전시회에서 큰 소리로 편안하게 트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트림이 나와도 숨기려하며 삭히지.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사랑의 삼각형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의 특징이다. 남자는 참 우유부단하다. 다른 여자한테 구애까지는 아니어도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한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의 집안에서도 다 알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내의 가족은 남자가 어떤 결단을 내리기를 채근하는데 남자는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다. 그 현재란 게 자신의 감정일 수 있는데 좀 마담 보바리가 갖는 열정을 위한 열정, 혹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참을 수 없는 현재를 참을 수 있기 위한 열정에 몰입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의 외도 상대인 여자는, 1950년대라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진보적이고 주체적이다. 남자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도 않으며 결단력있는 선택(결국 남자를 떠나는)을 하는 건 바로 여자다. 남자가 가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박수쳐주고 싶은 결정이다. 말하자면 신식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남자의 아내.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는데 껍데기하고 살 수 없다며 휑-친정으로 와 버린다. 주변에서 남편의 바람을 모른척 하지 그러냐며 부추긴다. 순종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아내.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이 드러내는 아내의 고민은 현대극하고 비슷하다. 남자를 용서할 것인가 말것인가, 아내의 위치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고민을 한다. 아내한테 조언을 하는 건 의외로 비혼인 동생이다. 결혼이란 제도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해서 그런지 지혜로운 말을 한다. 결혼한 언니한테 오히려 부부가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라며, 진리를 말하는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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