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메가박스 VIP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할 정도로 영화를 못 봤다.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첫번째 이유는 노화다. 모친은 내가 애기일때만 해도 나를 업고 극장에 갈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셨단다. 지금은 자막이 나오는 영화는 정신 사납다고 하신다.-.-; 주로 단선적 드라마에 안착하셨다. 엄마의 취향이려니 했다. 내가 나이가 들고 생활인으로 밀착되어 가면서 그닥 안 좋았던 집중력은 더 산만해져 간다. 영화를 보면 별의별 잡생각을 다 한다.
토요일 영화를 보기 전에, 후배와 영화에 집중 못하는 산만함에 대해 한탄했다. 오랜 기간동안 영화보기에 단련된 터라 영화의 핵심을 보기는 하지만 영화의 질감이 감정세포에 가져다주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우리가 잃어가고 있다. 삶의 낙이 없어졌다고. 아트시네마에서 허우 샤우시엔 전작전을 하는 소식을 듣고 침을 흘렸지만 <남국재견> 딱 한 편 볼 시간이 났다. 십여 년 전쯤에 디비디로 봤던 영화고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영화다.
2.
1번에서 주저리주저리 쓴 이유가 역시나 영화보면서 딴 생각을 엄청했다.ㅡㅜ허우 샤우시엔을 롱테이크로 기억한다면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프닝에서 기차역이 나온다. 기차는 스크린 안쪽으로 달려가고 카메라는 기차가 달리는 반대방향, 즉 관객쪽으로 질주한다. 기차의 속도감만큼 카메라는 달린다. 기차와 카메라의 속도감이 기분을 들뜨게 하면서도 불안을 증폭시킨다. 기차나 철로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카메라가 마치 기차처럼 휘어진 철로 위를 달리다 문득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기도 하고 정지하기도 한다. 이번에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바로 카메라가 철로를 달리는 장면들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감정선이 다 들어가 있다.
인물들을 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대체로 뒤에서 정지해 있고 다수의 인물들이 왔다가 갔다한다. 우리는 인물의 얼굴보다는 뒷모습, 아니면 여러 사람들 동시에 본다. 카메라는 대사를 하는 인물을 담는 관습을 버린다. 인물들이 줄거리를 알려주는 정보성 대사를 하고 있을 때, 카메라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로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을 선별하지 않은 채 한 프레임에 그대로 담으면서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한 프레임에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발생한다. 밥을 먹으면서 개에게 자신이 먹던 젓가락으로 밥을 주는 장면이 전경에 있고, 뒤에서는 욕망을 논의하는 몇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고. 우리가 들어야 하는 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들의 대화지만 실제 시선을 그 모든 일에 무심한듯, 개들과 사이좋게 자신의 젓가락을 나눠쓰는 이의 심성이다.
내 정신세계 같기도 하고 실제 생활의 단면같기도 하다. 그래서, 실은 영화가 굉장히 극적이고 역동적인 줄거리인데도 축소되어서 적극적으로 보려고 하는 이의 눈에만 극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타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그렇듯이. 내가 관심을 가지면 큰 사건이고 관심을 버리면 별 일 아니듯이. 그리하여 나는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하지 않기로 했다.ㅎ
3.
이 영화는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굉장히 감각적이다. 속도감도 중요한 몫을 하지만 음악 역시 비트가 강한 락이 사이사이에 치고 들어온다. 하지만 인물들의 욕망이 충돌해서 폭력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상대적으로 정적이다. 멀리서 인물들의 동작을 잡으면 코믹해보이기까지 한다. 폭력까지 사용할 정도의 절박함은 한 걸음 뒤에서 보면 우스워보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2006. 8. 11
끈끈한 여름을 더 끈끈하게 해주는 영화. 덜컹거리는 기차 안. 기차의 소음이 주가 되고 전화하는 카오의 목소리가 사이사이 들린다. 그의 동생 아비와 아비의 여자 친구를 내려준 기차는 화면 속에서 멀어지고 빈 철로가 끝없이 펼쳐진다. 세 사람의 낯선, 그러나 일상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카오는 꿈을 꾼다. 상하이에 식당을 열겠다고. 타이페이라는 공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른 곳을 꿈꾸게 한다. 카오는 상하이를, 그의 여자친구는 그를 떠나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조금씩 해왔던 투자는 어긋나고, 돈을 좇아 남쪽으로 오지만 돈은 가문이란 테두리로 숨어버린다. 남겨진 건 형제애. 아니 그의 어깨에 실린 짐으로 다가오는 가족이다. 아픈 아버지, 철없는 건달인 동생과 그의 여자친구.
몹시 무거운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경쾌한 면이 있다. 강렬한 음악과 카메라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덕분이다. 대만 남부의 울창한 산길을 달리는 차 앞에서 카메라는 함께 달려가거나 혹은 달리는 오토바이를 마주하며 달리다 어느새 정지해 있다. 카메라 앞을 인물들이 왔다갔다한다. 앞 쪽에 있는 인물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뒤에 포커스 아웃되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주변의 소음이 인물들의 대화소리를 먹을 때도 있다. 그 때문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귀를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지만 자막만으로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조급함에 자꾸 볼륨을 높이게 된다.
영화 속의 카오는 무더운 기후를, 똑같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사는 것에 지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는 데 충실하다. 마지막 장면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사고가 나고 그의 생존 여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똑같은 내일을 그에게 살게 할 것인가, 오늘로 똑같은 날을 마감하도록 할 것인가. 살리든 죽이든, 둘다 잔인하다.
덧. 하나. 미국에서 출시된 디비디여서 영어자막만있어 이름의 아우라에 대한 불만. 아비는 flat head 그의 여자친구는 pretzel이다. 영어이름에서 오는 경박함이란..쯥.
둘. 아비로 나온 임강은 실제 대만의 뮤지션이고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했단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 제목을 뒤졌으나 못찾았다. 주제곡을 구하고 싶다. 중국어로 된 락이란 상상도 못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