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브라질의 무용수 데자와라가 막 인기를 얻을 찰라에 지구 반대편에서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일상에서 도망쳐서 낭트로 가는 기차에 타면서 시작된다. 개찰을 하지 않아서 검표원이 실랑이를 벌이지만 언어 장벽에 부딪친다. 언어란 보편적인 기호가 아니라 일정 집단의 취향과 기호다. 개찰의 개념이 브라질에는 아마도 없는 거 같은데 깐깐한 원칙주의자 검표원은 언어의 장벽 따위는 뛰어넘을 기세다. 여기에서 유머가 파생된다. 없는 개념을 그것도 언어도 안 통하는데 설명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로드무비가 그렇듯, 데자와라는 기차 안에서 변호사라는 친구를 만나고 법정에도 가고 그 친구의 친구집에도 가고 의뢰인이 사는 작은 섬에도 간다. 데자와라와 주변 인물들은 등장할 때는 주인공과 같은 비중을 갖는데 서사가 진행되면서 엑스트라의 위치로 전환된다. 같이 본 후배는 이런식의 인물배치과 사용에 대해 경악했다. 나는 어쩌면 현실에서 실제 인물간의 관계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주에 만났던 사람을 이번 주에는 안 만날 가능성이 많고 또 기차에서 마주친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다시 마주치는 일반 서사가 어쩌면 더 이상할 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함께 모인다는 면에서 굉장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이다. 어떤 모임에서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말을 안 하고 듣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현실적 인물 사용과 배치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ㅎ
아무튼, 데자와라는 여행자로서 훌륭하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을 믿는다. 반면에 철도청 검표원은 티켓에 뚫는 구멍만한 세계에서 살다가 설득과정을 거쳐 자의로 합류하기로 하고 여러 가지 우연을 함께 겪는다. 그러다 획기적 제안을 받는다. 브라질 무용수를 찾으러 온 기획사 사장의 꼬득임으로 뉴욕의 브로드웨이로 진출해 가수가 될 꿈을 잠시, 정말 잠시 갖는다. 검표원이 구멍만한 세계에서 나가려고 한 발을 내딪는 순간에 현실은 다시 검표원의 역할을 떠넘긴다. 그리하여 후반부는 이 검표원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유 섬이란 외딴 작은 섬에서 낭트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낭트로 돌아가는 여정은 시적이다. 서해여서 썰물대라 계속 작은 배로 갈아탄다. 물은 흙과 섞여있고 바람은 분다. 어부들의 투박한 인상과 말투는 진지하다. 바다 위에서 낯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배에서 배로 이동을 하고 깐깐한 검표원은 감사하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마침내 뭍에 내려 허벅지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뻘밭을 걸어서 히치하이킹까지 하는 과정을 멀리서 수채화처럼 담는다. 소금기있는 바람과 물살을 보면서 아, 이 영화는 여름 바캉스가 아니었지, 하고 깨닫게 된다. 검표원의 바캉스였다. 검표원은 철도청 직원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고군분투했다. 그가 뉴욕에 간 거 보다 더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초긍정적 생각을 나는 한다.
원리원칙주의자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자기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가 평생 고수했을 원칙을 조금 덜어낸다면 그가 미국에 가서 국민가수가 되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탈이 아닐까. 검표원의 행보를 보면 우리의 맥락없이 쳐대는 몸부림하고 닮아있어서 애정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