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야봤다. 해맑은 동화같은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동화로 넘길 수 없게 현실을 에둘러담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아이들의 눈높이로 접근한다. 하루 아침에 (아마도) 아빠 피자가게, '피자헉'이 망하고 망한 흔적을 보여주는 작은 밴에서 어린 남매와 엄마가 떠돌이로 살아간다. 일주일 후에 돌아오겠다던 남편은, 아빠는 몇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지소는 근사한 생일파티를 친구들한테 보여주기 위해 집이 필요하다. "평당 500만원"이란 문구에 분당 옆 평당이란 동네에 500만원 짜리 전셋집을 얻기 위해 개를 납치하기로 한다.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고 사례금을 받아 평당 동네에 집을 사려는 계획이다. 웃음 유발지점이 현실을 모르는 아이의 시선에서 비롯되는데 웃다보면 아이들의 비현실적 대화는 현실을 은유하고 있어서 감독 천재네, 하는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만약 이 상황을 어른으로 치환한다면 아마도 스릴러나 장르영화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고 별로 기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사례금을 노리고 개를 납치하려고 하는 이유는, 친구들한테 부러움을 받는 생일파티를 열기 위해서다. 지소보다 한 달 전에 집에서 생일파티를 했던 아이가 지소한테 묻는 질문은, 너희집 우리집보다 더 커, 였다. 이 단순 비교 대화 속에 타자의 시선에 의존적인 한국사회의 단면이 투영되어 있다. 물질적 부는 상대적이다. 소유욕은 환경에 의해 자극받는 경향이 있다. 지소는 보란듯이 파티를 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개와의 교감을 통해 남매는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타인의 것을 훔치고 누리는 행위 속에는 다른 누군가의 눈물이 들어있다. 아이들한테는 개였지만, 현실에서는 나 이외의 약자고. 약육강식의 길을 정주행하다가 아이들은, 정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연료의 비윤리성을 눈치채고 문득 좌회전을 한다.

 

노숙자로 살아가는 이가 딸이 보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못 만나겠다고 하니까, 뭐가 부끄럽냐고, 현답을 한다. 영화는 동화답게 해피엔딩이다. 영화 속 인물 중 가장 강한 인물로 나오는 개 주인이 아이들을 위해 500만원에 전세를 내어준다. 요점은 이거다. 물질적 잉여를로 축재를 하는 계급이 필요한 만큼만 갖고 그 잉여분 필요한 누군가한테로 온정을 담아 나눠주면 금고는 조금 비겠지만 마음은 가득차게 되는 것. 물론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덧. 토요일 오후 아트나인은 한산했다. 봄이 오니 어두컴컴한 극장 보다는 밖으로 나가는게 더 어울리는 오후였다. 자리를 찾았더니 옆에 네 식구가 이이 앉아있다. 여자는 젖먹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남자는 대여섯살 쯤 되는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젖먹이를 데리고 극장에 올 정도로 절박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았을 선택에 당황했지만 불편해하지 말고 너그럽게 받아들여야지,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여자는 젖병을 꺼내 아이한테 젖을 먹였고 아이는 힘차게 우유를 먹었다. 그 쌕쌕거림을 들으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우유를 다 먹은 후에 아이는 (당연히)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여자는 어둠 속에서 아이 안는 자세를 이리저리 바꿨다. 극장이 아니라 어느 대합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 뒷자리를 둘러보고 빈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는 간간이 칭얼대고 소리를 크게 몇 번 질렀다.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아이를 안고 어르곤했다. 영화 후반부에 대여섯살 된 아이는 일어나서 어둠속을 걸어다녔다. 어느 누구도 아무말 안 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온 부부의 용기를 인정하기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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