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이 개봉 삼일 만에 극장에서 사라졌단다. <다이빙벨>도 사라질까봐 서둘러 가서 봤다. 남다은 평론가가 <씨네21>에서 쓴 <한공주>에 대한 비평글이 있다. 글의 요지는 윤리적 폭력에 객관성을 유지하는 게 미덕이 아니라 주관적 시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한다고. <다이빙벨>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구성된 다큐이다.
올 한 해, 충격과 절망으로 몰아넣은 참사를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영상들을 극장에서 편안하게 관람하는 게 마음이 편치않다. 그러나 보지 않으면 잊는다. 그러니 편안하게라도 봐야한다. 참사가 터졌을 때 구조적 문제는 거의 다 지적되었고 마치 일대 개혁이 있지나 않을까, 찰나의 희망을 품었다. 어이없는 결말로 참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져간다. 하나도 변한 게 없고. <다이빙벨>에서 새롭게 지적하는 사실은 없지만 가장 강하게 지적하는 건 언론의 폐쇄적이고 퇴폐적인 태도이다. 이미 우리도 알고 있다. 참사 후 근 한달 동안 공중파와 케이블 뉴스를 안 보고 잘 안 듣는 팟캐스트를 찾아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닐거다.
너무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어 이 정권이 다 끝나가는 줄 알았는데 겨우 2년 밖에 안 지났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많다니, 절망적이다. 시간이 많아서 절망적이기 쉽지 않은데. 한편으로는 깊은 회의도 있다. 이 정권이 끝난다고 해서 다음 정권이 더 괜찮을 거란 보장이 없을테니. 터널을 바져나왔는데 또 터널이 있을 것만 같은 상황.
"잊지 않겠습니다"란 말로 다짐을 한다. 이 말 속에는 잊는 게 속성이니 다짐이라도 필요하는 말이다. 천진한 생명을 보내고도 아무렇지 않은 인간들도 많고 잠시 아파하다 또 잊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최소한의 윤리적 양심이 있는 이들이라도 이 다큐를 보고 잊지 않게 담론을 계속 형성하는 일이, 지금 우리가 피지도 못한 채 진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설령 결과가 부정적일지라도 말이다. 진실 규명을 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