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언가의 혹은 누군가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어 계열화를 하려고 하는 게 사람의 속성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세상의 것들은 하나의 분류에 속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장르 구별은 무의미하다. 가령, 왓챠는 내 영화 취향을 스릴러, 액션 성향으로 분류한다. 처음에 깜짝 놀랐는데 왓챠가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지 몇 편의 영화 분류를 보니 그럴만하겠더라. 아무튼 이 영화는 공상과학 영화로 분류되는데 헛웃음이 난다. 이 영화가 공상과학영화로 분류된 이유는 전적으로 외형적이다. 솔라리스란 행성이 등장하긴 한다. 영화 절반이 솔라리스에 도착한 우주선 안에서 머무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 우주선에서 본 지구의 바다 이미지도 종종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솔라리스 행성과 지구의 바다는 모두 등장인물의 기억을 소환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솔라리스는 비물질적 기억을 물질화하는 통로다. 즉 솔라리스는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와 같다.

 

2.

그럼 타르코프스키는 어떤 기억을 물질화하고 싶어했나. 타르코프스키가 쓴<봉인된 시간>을 좀 들여다보면,

 

"나는 우리 인간들 모두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특별히 인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에 관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숙고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 안에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원하고 본질적인 것을 언제나 무시하여 왔다. 인간은 영원하고 본질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기만적인 우상들을 쫓아 간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들 중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인간 삶의 밑바닥을 이루는 예의 매우 평범한 기본적 부분-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기본적 부분은 인간의 영혼 속에서 삶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인간 실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다."(256)

 

3.

<솔라리스>는  사랑에 관해 말한다. 사랑하는 여인 하리를 잃고 솔라리스란 행성에 고립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닮은 행성인을 사랑하게 된다. 남자는 하리의 환영을 좇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리랑 닮은 여자는 남자의 환영을 알아차리고 고통에 몸부림친다. 이를 지켜보던 남자는 윤리적 죄책감과 수치를 느낀다. 김영하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105)라고 말했다. 타르코프스키는 등장인물을 통해 "수치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우주탐사를 구원이라고 봤다. 남자는 인류를 대표해서 임무를 수행한다. 남자의 정신적 혼란은 인류가 믿는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인간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4.

타르코프스키는, 인식은 불안과 결핍, 고통과 환멸을 동시에 수반한다고 본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리와 닮아서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의 도덕적 양심이 작용한다. 양심은 비극적일 수 있으며 존재의 불안을 초래한다. 그래서 멀리 있는 우주의 신비가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바다의 움직임을 보는 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5.

내용은 심오한데 재미있느냐 하면, 영화 상영 시간 절반은 다른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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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2014-10-19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엇, 저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솔라리스 너무 재미있게 보고 완전 열광적인 기분으로 돌아왔는데요...ㅠㅠ.. ^^ 대형 스크린으로 봐서인지.. 암튼 인셉션 등의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느낌.. 데이비드 린치라면 모를까요.^^

넙치 2014-10-21 14:11   좋아요 0 | URL
저도 아트시네마에서 봤어요. 재미있으셨다니..음 전 딴 생각 진짜 많이 했어요. 진짜 솔라리스 행성에 있었던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