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나 이중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규범과 제도에 순응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라면 규범과 제도를 어기는 은밀한 모습도 역시 일반적이다. 두 자아는 충돌하곤 한다. 머릿속에서 실재, 그러니까 다른 이들한테 보여지는 나와는 다른 모습을 상상하곤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러한 "분열로 실재하는 자가 된다고 한다. 즉 분열로 주체가 되고 기표에 의해 잘려나가고 배제되면서 보다 못한 자less-than-one으로 구성되면서 누군가some one이 된다"고 한다. 뒤늦게 입사한 제임스는 사이먼 분신이다. 사이먼/제임스는 결국 동일 인물인데 제임스가 등장하기 전에 사이먼은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7년이나 다닌 회사에서 출입증이 말썽을 부리는 일이 발생하자 출입관리 직원은 사이먼을 못 알아본다. 사이먼의 존재감 부재를 드러내는 일은 오프닝에서도 묘사된다. 텅빈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다가와서 사이먼이 앉아 있는 자리는 자신의 자리라며 비켜달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소심한 사이먼은 일어나서 빈자리로 가득한 의자를 바라본다. 사이먼은 전형적인 "보다 못한 자"로 등장을 한다.

 

사이먼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계기는 사이먼의 또 다른 이름 제임스가 등장하면서다. 제임스는 마음에 안드는 일과 대면했을 때 거침없이 속마음을 말한다. 제임스는 사이먼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인물이다. 사이먼과 제임스가 사이먼이 단골인 식당에 함께 가는 장면이 있다. 사이먼은 언제나 웨이트리스의 눈치를 보며 주문을 했는데 제임스는 저녁에 아침메뉴를 가져오라며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우긴다. 사이먼이 늘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제임스의 입을 말하고 있는 것이란 확신이 드는 장면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소 거칠고 파괴적인 제임스에 대해 비난이 아니라 호감을 표시한다. 사이먼이 당황하는 지점인데 그로 인해 사이먼의 속성은 점점 웃음거리가 되면서 부각된다. 즉 사이먼은 존재 속의 결핍이라는 구조로 제임스와 질서 체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이먼이 의미를 두지 않았던 부분은 사실은 사이먼이 의미를 두었던 부분이다. 식당이나 지하철에서도 자신의 당연한 요구를 당당히 할 것,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 그리고 혼자 짝사랑하면서 망원경으로만 훔쳐봤던 한나한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 등.

 

사이먼이 자신의 분신 제임스를 소환하는 이유는, 제임스의 욕구를 재현하면서 겉으로는 고통을 받지만 실제로는 그 판타지를 통해 자신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다. 결핍은 분열의 원동력이고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이먼은 그 누구도 아닌 사이먼이 되고 싶어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2.

제시 아이젠버그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한겨울에도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외부에 무관심한 채 무표정한 얼굴을 보여준다. 내면의 갈등으로 표정에서 황망함이 절절하게 드러나지만 묘하게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마지막 장면에서 클로즈업으로 잡힌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슈트를 입었다기 보다는 슈트 안으로 사람이 들어갔다는 말이 어울리게, 사이먼은 헐렁한 슈트를 입고 멍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을 발사한다. 멍한 시선인데 무언가 응시하고 있는 강한 시선이라니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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