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 말이 많은 영화기도 하면서 또 할 말이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무수한 말들이 떠오르고 책까지 뒤적여봤지만 도통 감독의 시각에 동의하기란 힘들다. 그래서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여성 해방을 성만을 통해 이야기하려 하나. 이야기를 하는 조와 이야기를 듣고 해석하려 애쓰는 샐리그먼의 구도다. 조와 샐리그먼은 대척점에 있다. 섹스 중독자와 무성애자. 두 사람이 추구하는 바는 같다. 둘 다 오르가슴을 추구한다. 다만 그 수단이 다를 뿐이다. 색정광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수단으로 택한다. 무성애자인 샐리그먼의 무기는 이성이다. 그는 독서광이다. 조가 평생 오르가슴을 찾아 섹스 파트너를 찾아 헤맸다. 샐리그먼은 평생 독서를 통해 지적 쾌락을 추구하고 분석과 이성을 좇았다. 조의 이야기에 샐리그먼이 들이대는 분석틀을, 감독은 의도적으로 희화화한다. 즉 이성이나 지식은 본능보다 결코 우월하지도 않으며 때론 본능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걸 조롱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이성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방법이 지나치게 극단적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게다가 결말에서 조의 선택이 아니라 샐리그먼이 본능적 행동을 취할 때 총으로 대응하는 조의 행동은 이성의 두 얼굴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이성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하찮은 것쯤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맞는 말이지만 왠지 불쾌하다. -.-;
2.
볼륨1과 볼륨2가 런닝타임이 길어 편의상 나눈거지 원래는 한 영화다. 볼륨1의 오프닝과 볼륨2의 엔딩은 똑같다. 암전으로 시작해서 암전으로 끝난다. 암전과 암전 사이에 긴 이야기가 있다. 그 긴 이야기는 실은 색정증이란 조의 섹스 라이프 일대기다. 표현 수위는 높지만(요즘 대세인지 수위 높은 영화가 많다) 보고서처럼 건조하다. 조의 심리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조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옹녀쯤 되는데 옹녀하면 떠오르는 게 쾌락과 해학이다. 종종 유머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조를 보면서 옹녀의 고통은 간과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가 만족할 줄 모르는 성욕의 소유자고 그 과도한 욕망으로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지쳐간다. 정신분석에서 "욕망은 충족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란 말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인물이다. 존재의 근원적 물음과 회의를 지니는 인물로까지 상승시킬 수 있겠으나 나는 조를 표현한 감독한테 그런 지위를 주고 싶지 않다.@.@
3.
영화가 양괄식인 이유? 암전 전과 암전 후는 현실이고 암전 후와 암전 전은 영화다. 감독의 말대로 이건 말도 안 되는 한편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