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용하는 말인 '소수자'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영화다. 제목은 '야간비행'이란 이름을 가진 바에서 따왔다. 한때는 게이바였으나 영화 속에서는 철거를 기다리는 버려진 공간이다. 원칙적으로 아무도 못 들어가도록 폐쇄된 공간인데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 누군가가 다른 이를 데리고 와서 잠시 머물다 가는 상징적 공간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공간에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나 버려진 공간을 찾을 때 절박하거나 절망적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절망 속에서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수 있는 함의가 있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네다섯 명이다. 이들 모두 어떤 의미에서 소수자다. 모의고사 1등급으로 서울대를 바라보는 용주. 그는 성소수자다. 모범적 학교 생활과는 별개로 실제로 용주가 뭘 좋아하고 어떤 아이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낳고 기른 엄마도 용주를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용주의 주시를 받는 한기웅. 기웅 역시 학급에서 소수자다. 주먹을 쓰며 패거리를 몰고 다니지만 방과 후 택배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의 가정사는 서서히 드러나는데 노조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노조를 배신한 후 주변인들한테 받았던 멸시와 질타로 트라우마를 지니게 된다. 그 트라우마로 폭력이란 방어기제를 택한다. 폭력은 기웅을 세상과 더 멀어지게 하고 기웅은 고립된 세계에 서 있는다. 기웅을 따르는, 아니 실은 기웅의 폭력성을 이용해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반장. 그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법을 모르고 폭력의 잔인성에서 안도감을 얻는 가엾은 영혼이다. 반장 역시 다수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소수자다. 그리고 기택. 흔히 왕따인데 용주만이 기택을 친구로 여기지만 결정적 순간에 용주가 동성애자란 걸 밝히면서 용주를 배신한다. 기택은 오랜 왕따와 집단 구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용주의 비밀을 이용한다. 기택은 하나 있던 친구마저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모두 같은 반인 남고생들이다. 이들 사이에 힘의 역학과 관계의 그물망이 얽히고설켜있다. 청소년이 외부에 비춰지는 시선도 서늘하다. 학교와 선생님은 입시에만 관심이 있고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무관심하다. 아이들은 겉으로는 규칙을 지키며 사회화 과정을 잘 이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면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본인들도 모르는 폭력성에 노출돼서 상대를 위협하는가 하면 어느새 자신이 상처를 받고 있다.
영화가 남자고등학교란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지만 학교 밖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영화를 보는 동안 남고생 이야기라는 걸 잊게 된다.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영화는 다행히 약간의 희망을 던져준다. 용주가 아웃팅을 당하고 집단 폭력을 당한 후에 기웅을 찾아간다. 기웅은 용주가 아웃팅을 당했을 때, 억제했던 분노를 마구잡이로 분출한다. 그 분노가 용주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트라우마로 친구가 늘 없었던 기웅이 마음 속으로 유일하게 친구라고 받아들인 인물이 아마도 용주가 아니었을까. 그랬기에 용주를 지키는 건 바로 기웅 자신의 친구를 지키는 거니까. 외롭지 않냐는 용주의 물음에 기웅은 처음으로 울먹이며 말한다. 외롭다고, 늘. 영화는 여기서 끝이난다. 그래서 약간 희망적인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서로의 결핍을 인정했고 그것만으로도 한걸음씩 서로에게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웅은 소년원에 가야할 거고 더 깊은 외로움의 늪으로 빠질 것이다. 성소수자인 용주 역시 자퇴할 거고 이성애자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야하는 형벌을 평생 짊어질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되보니 어른은 훨씬 더 외롭다. 자존심때문에 안 외로운 척 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