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언가를 인지하고 알아차리는 행위에 대해 여러 학문영역에서 정의하려는 노력이 있다. 신경과학에서는 뇌의 작용을 연구하고 철학에서는 인식에 대한 정의를 다각도에서 내리려고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인지하고 싶은 것을 인지한다는 말이 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뇌에 새겨진 반복된 패턴대로만 사물과 현상을 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이러한 인지적 허점에 기반을 둔 이야기다.
오랫동안 "남자가 연기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다. 중국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직원으로 파견된 르네가 <나비 부인> 오페라에서 나비 부인을 연기한 여장 남자, 리링을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서양인이 동양인을 보는 시선에 관한 대사가 있다. 리링이 소년같은 가슴을 가진 자기가 왜 좋냐고 묻자 르네는 대답한다. 그게 순수한 여학생이고 동양여자는 그렇다고. 르네는 동양 여자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그 환상을 굳건하게 믿는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리링의 벗은 몸을 본 적도 없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는다. 리링을 의심하는 건 자신이 구축한 환상에 대한 믿음을 깨는 것이므로 르네는 리링의 말을 무조건 믿는다. 사랑의 대상이 지닌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는 이가 대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요소만을 취사선택해서 재조합하는 일만이 필요하다. 환상이 깨지면 사랑도 깨진다. 현실의 많은 커플들이 예증하고 있듯이. 그럼 환상을 유지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 영화를 개봉 당시 봤을 때, 어떻게 르네는 긴 시간동안 리링이 남자라는 걸 몰랐나, 궁금해 하면서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리링이 남자라는 걸 나중에 알았고 어제 이 영화를 볼 때는 리링이 남자라는 정보를 미리 입력하고 봤다. 리링이 남자라는 걸 알고 봐도 존 론의 연기는 여전히 레전드급이다. 살짝 장국영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