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캉스동안 아름다운 한 호수에 매일 동성애자들이 찾아온다. 아마도 호수 반대편이 이성애자들을 위한 공간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그 호수 반대쪽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태양은 이성애자의 호수나 동성애자의 호수를 고르게 비춘다. 호수 반대쪽을 찾아오는 이들은 빛으로 넘실대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수건을 펴고 나체로 누워 일광욕을 한다. 카메라가 다리 아래쪽에서 일광욕하는 이들을 잡는다. 마음에 드는 누군가한테 말을 건네고 마음이 통하면 호수 뒤에 있는 작은 숲으로 걸어들어가 섹스를 한다. 매일 벌어지는 풍경은 똑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해는 매일 뜨고 바람은 매일 불지만 어제의 햇빛과 바람이 오늘의 햇빛과 바람과 다른 것처럼.

 

전반부에 작은 호숫가를 나체로 돌아다니는 이들의 이미지가 주로 나온다. 동물의 왕국을 보는 기분이었다. 군살 없는 매끈한 털을 가진 맹수들이 걸을 때마다 근육질을 드러내고 짝짓기를 하고 무심히 앉아있다 또 다른 짝을 만나 또 짝짓기를 하는. 모든 동물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동물의 세계에서 짝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본능에 충실하다. 이 호숫가를 찾는 이들이 그렇다. 그리고 질투도 존재한다. 그 질투가 육욕을 바탕으로 둔 거 같은 느낌이서 사랑보다는 동물의 짝짓기를 떠올리는지 모르겠다.

 

2

이렇게 동물적 욕정을 드러내는 게 규칙인 작은 호수가에서 욕정을 넘어서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 프랑크는 운명의 미셸을 만난다. 프랑크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라면 저녁도 같이 먹고 밤을 같이 보내야한다고 믿는다. 미셸은 호수에서 만나는 걸로 충분하고 사생활은 비밀로 간직하자는 주의다. 연인 간에 흔히 있는 의견대립일 수 있다.

 

매일 호수에 나와서 혼자 앉아만 있다가 가는 앙리가 있다. 프랑크는 호수에 나오면 앙리 곁에 잠시 앉아 잠깜씩 대화를 나눈다. 앙리와 프랑크는 우정과 사랑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거 같다. 두 사람은  섹스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함께 밥을 먹거나 술 한 잔을 하는 데 동의한다.(실제로 그러진 않지만) 미셸을 만나 설레고 갈등하는 프랑크를 곁에서 앙리는 지켜본다. 앙리에 대한 정보를 조합해보면 섹스에 탐닉했던 적이 있으나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혼자 지낸지 한 2년 쯤. 그는 혼자 밥먹고 혼자 있는데 지친다고 말한다. 프랑크가 걸어오는 걸 보면 마음이 설렌다고 고백도 한다. 프랑크가 미셸한테 갖는 애절함만큼 앙리도 프랑크한테 애절했다. 겉으로 무뚝뚝하지만 내면의 소용돌마저 무딘게 아니듯이.

 

3

미셸은 전 애인을 살해했다. 프랑크는 목격자지만 형사의 탐문에도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미셸의 살인동기는 영화에서 안 밝혀진다. 프랑크가 목격자이면서 미셸의 살인을 숨기려한다. 미셸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프랑크 자신의 욕정 때문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앙리가 미셸의 범행을 알고 있어서 미셸은 나중에 앙리도 죽인다.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앙리를 프랑크가 본다. 그때 앙리의 말, 니가 보는 앞에서 죽어서 행복해. 어둠이 사방을 덮고 있고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바람 소리 속에서 프랑크는 애절하게 미셸, 하고 부르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어둠에 묻어둔 채 영화가 끝이 난다. 

 

4

사랑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육욕과 사랑이란 감정이 일어나는 걸 구별해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거 같다. 육욕에서 출발해서 드물게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고 둘이 혼재할 때 치명적으로 맹목적이 된다.

 

덧.

몸을 응시하는 방식에서 내 관습에 적잖게 놀랐다. 이 영화는 남자가 남자를 매력적으로 볼 때를 담는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에서 볼 수 있는 각도로, 종종 남자의 육체를 담는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육체에 대한 응시 방식은 이성애자나 혹은 남자가 여자가 바라보는 관점에 익숙해져 있는 걸 깨달았다. 카메라가 여성 신체를 대상화하는 방식에는 비교적 익숙해져 있는데 남성 신체를 대상화하는 걸 거의 처음 본 거 같고 살짝 충격적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식은 동성애자가 동성한테 느끼는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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