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엄청난 비바람을 뚫고 영상자료원에 가서 시네마 베리테의 창시자 장 루쉬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리고는 백만년 만에 에릭 바누가 쓴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사>를 펼쳐봤다. 책갈피가 노르스름하게 바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시네마 베리테에 밑줄도 좍좍 그어져있다. 

 

"시네마 베리테는 진실을 추구하는 실험의 개론서 격이었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긴장이 유발될 수 있는 곳에 카메라를 가져가 위기가 조성되길 바라며 위기 상황을 기다렸지만 시네마 베리테는 위기를 재촉하여 상황을 포착하였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제작자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이길 바랐지만 시네마 베리테는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주체적으로 영화에 참가하게 하였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상황에 관여하지 않는 방관자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시네마 베리테는 상황의 위기를 조성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했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카메라에 다가올 수 있는 사건들에서 진실을 찾았지만, 시네마 베리테는 "인위적인 환경에 의해 감추어진 진실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301)

 

<조금씩 조금씩>은 시네마 베리테보다는 극영화같다. 심지어 줄거리도 있다. 니제르 출신의 다무레는 조금씩 조금씩이란 무역회사 사장이다. 멋진 고층건물을 갖고 싶어 고층건물이 많은 파리를 둘러보려고 파리로 간다. 파리의 에펠탑이 파리가 아니라고 믿는 다무레는 파리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알기 위해 잠시 파리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다무레가 보는 파리와 파리인의 삶이 담긴다. 이방인인 다무레가 보기에 파리인은 탁한 공기 속에서 살고 조그만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산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인 집에 사는 게 어떤 지 모르는 친구들한테 그 기이함을 적어 엽서로 보내지만 대자연 속에서 사는 친구들은 그가 도시에 가더니 미쳤다고 생각한다. 아파트에서 어떻게 가축을 기르냐고. 두 문화의 충돌이 유머스럽게 드러난다. 다무레는 니제르에서 대자본가이다. 마음에 드는 비싼 수제 자동차를 일시불 현금으로 지불하며 프랑스인 설계사한테 고층건물 도면을 의뢰한다. 길에서 그가 만난 아프리카인에게 형제라 부르며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나중에는 백인 비서를 고용해 니제르로 데려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통해 다무레는 파리란 도시를 조롱하는 같았는데 영화를 조금 더 보다보면 오히려 아프리카인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 더 이국적인 볼거리로 묘사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를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재 이 다큐를 보면 감독의 의도와 별개로, 아프리카인 특유의 사고방식을 관찰하고 있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시네마 다이렉트니 시네마 베리테니 해도, 일단 카메라를 쥔 사람은 권력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논쟁이 나왔다. 시선은 권력이란 말이 있듯이, 카메라에 담겨진 상황들은 감독이 선택한 상황들이다. 다큐멘터리는 관찰에서 나온 진실이라는 본질을 배반하는 연출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피사체나 인터뷰이들은 아무래도 타자화 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장 루쉬 역시 이런 비난을 좀 받았다고 한다.

 

다무레 혹은 감독이 파리를 관찰하고자 한 의도와 달리 관객은, 특히 오늘날의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프리카인을 관찰할 수 밖에 없다. 자본과 부인의 수가 비례해서 돈이 많으니 부인을 또 안 둘 수 없다는 말이나 파리의 (아마도) 최신 의상디자이너가 아프리카 동네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광경을 본다. 다무레와 친구를 따라 온 프랑스인 세 명이 있다. 한 명은 아프리카 출신의 의상디자이너, 또 한 명은 그녀의 친구이자 나중에 다무레의 19번째 부인이 되는 백인 비서, 목동일을 하고 싶다던 노숙인. 이들이 니제르에 와서 문화적 이질감을 겪는다. 그들의 니제르행은 자발적이었지만 정작 니제르에서 도시인의 습성과 권태, 게으름을 벗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택하고 다무레는 무역이란 게 자본의 착취와 축적의 순환이란 걸 깨닫고 도시인이길 포기한다. 고층건물을 버리고 다시 자연과 어울리는 초가집을 지으며 영화가 황망스럽게 끝난다.

 

영화에서 내린 결론은 태어난대로 살자, 이런 분위기이다. 영화는 아주 귀엽고 재밌는데 시네마 베리테의 문제의식은 안드로메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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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3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4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4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넙치 2014-08-15 08:54   좋아요 0 | URL
저도 우아하지 못해서..ㅠㅠ
요즘은 젊어지는 거 보다 우아하게 나이드는 데 더 관심이 가는데 우아하기란 힘든 거 같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