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우 혹은 등장인물

세상에, 세 배우 모두 훌륭하다. 한 번도 배두나가 이쁜 얼굴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를 보고 배두나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하면 공허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커다란 눈망울에서 외부에 대한 방어와 불안, 공허를 읽을 수 있다. 밤마다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벌컥벌컥 들이키는 행동과 표정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를 짐작한다. 대체 저 여자는 왜 밤마다 술을 물 마시듯이 마시는지 궁금해서 이야기가 전개될 때까지 숨을 죽이게 된다. 전반부를 지나서야 그 공허한 눈동자와 표정의 정체를 서서히 알 수 있다. 대사가 많지 않은 캐릭터인데 배두나의 표정은 그 어떤 대사보다도 서늘한 감정을 전달한다.

 

영화 줄거리를 다 알고 다시 송새벽이 연기한 용하란 인물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봤다. 용하는 개망나니가 맞다. 술 먹으면 개가 되고 의붓딸을 폭행하고. 불법체류자들을 구타하고 임금을 착취하고. 정황상 용하는 줄거리가 드러나지 않았던 영화 초반부터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한다. 마을의 유일한 청년, 용하가 무슨 일을 하는 지 나중에 드러나도 저 인간은 그럴 인간이지, 라는 공감을 끌어내는데 그게 바로 송새벽의 힘이다. 용하가 도희기 왜 온 몸에 피멍이 들었는지 말해도 관객은 용하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영남이 믿지 않듯이.

 

마지막 장면에서 한 경찰이 영남이 한테, 도희를 보면 안 됐지만 왠지 무섭다, 고. 보통 사람이 도희한테 갖는 감정을 잘 전달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거짓말을 진짜처럼 할 수 있고, 또 자신도 진실이라고 믿는 아이. 아이는 그 누구한테도 사랑받아 본 적이 없다. 친엄마 마저도 자신을 버렸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 폭력적 어른한테 길들여져 있으면서도 폭력적 어른한테 폭력적으로 저항하는 아이. 폭력은 학습이다. 아이는 의붓 아버지의 폭력에서 자신을 지키기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법을 익혀간다. 아이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도 폭력과 함께 할 것이라는 걸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

자라나는 폭력적 성향을 누그러뜨리는 건 우리도 다 알고 있듯이, 관심과 사랑이다. 영남은  (부정적) 관심을 지나치게 받았던 사람이라 타인의 시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일종의 도주 중인 시간에 영남이 도희한테 순수한 박애주의적 행동을 보여주지만 영남의 과거를 들추어내는 계기가 된다. 영남이 마음에 커다란 메울 수 없는 구멍을 가진 표정을 왜 갖게 되었나.

 

잔잔하지만 긴장감이 팽팽한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에는 사건들로 휘몰아친다. 후반에 굵직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진다. 작은 마을 공동체가 폭력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면서 유대감을 갖는 사건, 영남의 과거, 도희의 폭력성 등등.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뒤에 있다보니 중심이 흔들리는 면이 있다. 인터뷰를 보니, 남을 돕는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걸 전달하고 싶었다고. 영화는 그래서 그렇게 끝이 난다. 영남은 도희를 도와서 한차례 고통을 겪었다. 손 털고 등을 돌렸다가 동료한테 무서운 아이라는 말을 듣자 다시 도희한테 손을 내미는 품성. 이 결말로 이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라 영화란 허구라는 걸 환기시킨다. 현실이라면 영남은 도희한테 다시 손을 안 내밀지 않았을까. 현실과는 다른 해피엔딩을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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