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책, 실은 청소년기에 읽었던 많은 고전들을 청소년기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즈음, 고전을 다시 읽으면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 나는 책만 그런 줄 알았다. 이번 달에 고다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영화도 책과 마찬가지란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고다르가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데 영화를 일종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실험적 기법과 끊임없이 쏟아내는 대사를, 어린 시절에 이해하지 못했다. 기록을 뒤져보니<주말>을 보고 나는 기괴하다고 적어놨다. 지난 주에 <주말>을 보면서 청년 고다르가 지닌 끓어오르는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고다르의 흘러 넘치는 에너지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청년기를 지나니 청년이  보인다.

 

2.

이 영화는 시퀀스숏이 두드러진다. 먼저 오프닝.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길에서 폭력 장면이 일어난다. 그리고 실내에서 마치 인터뷰처럼 진행되는데 여자의 담담하고 무심한듯한 진술을 통해 기이한 부부가 소개된다. 뼛속까지 속물인 부르주아지 부부의 정체성을 한 여인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부부의 비틀린 섹스 라이프를 통해 부부를 머리속에 그리게 된다. 그리고 부부가 나타나 유산상속을 받으려고 길을 나선다. 무슨 일인지 도로에는 사고 차들이 추돌 혹은 충돌했고, 또는 전복되거나 불타고 있다. 사람의 사지가 잘리기도 하고 몰골은 처참한데 길 바닥에 주저앉아 느긋한 채 있기도 한다. 우리는 이 모든 끔찍한 광경을 유명한 긴 트랙킹샷으로 본다. 부부가 결국 걷기로 결심하고 지나가는 길을 측면에서 카메라가 따라가면서 우리가 보는 건 전쟁이라도 난 게 아닐까 싶은 정도의 도로 상황이다.

 

이제 부부는 여자의 부모님집, 우앵빌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걷다 지치면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부부의 관계는 하나의 공동의 목표-유산상속-을 위한 연대일 뿐이란 걸 보여준다. 배려나 사랑 따위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사고가 나서 불에 탈 때 여자는 남편이 이마에 피가 나는데도 내 에르메스백을 외친다. 남편보다 에르메스백을 소중히 하는 여자와 연대하는 남편은, 유산을 위해서 장모도 죽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장면,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부부는 피아노 연주자를 만난다. 그 연주자가 어느 시골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시퀀스가 꽤 긴데 이 장면에서 엄지 두 개가 아니라 가능하다면 열 개라도 주고 싶다. 연주자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먼저 왼쪽으로 천천히 360도 회전한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회전했다가 다시 왼쪽으로 회전하면서 끝이난다. 이 영화는 급진적 다큐멘터리 기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이스 오버가 계속 되는데 이미지와 개연성이 부재한다. 이미지와 카메라의 관계 조차도 떼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면서 인물이 서 있는 열린 공간을 360도 회전해서 보여준다. 그것도 세 번이나. 그러면서 우리는 집 기둥,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농기구들을 본다. 이런 식의 프레임화나 카메라 움직임에서 잠시나마 부부의 약탈적 본능이 멈추는 것 같다. 음악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장면이 <주말>에서 가장 평온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2차 세계대전을 거쳐 드골집권기까지의 시기 묘사일 거다.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우앵빌에 도착해서 여자의 엄마를 죽이고 재산을 갖고 집으로 다시 향하는 여정에서 혁명군을 만난다. 거액의 돈은 혁명군한테는 무의미한 휴지조각이다. 부부는 인질이 되었다가 여자는 마침내 동화되는 거 같은 분위기다.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데 알제리 학살의 은유를 담고 있다. 여기서 카니발리즘까지 확장되는데 혁명과 전쟁의 본질에 대한 고다르의 격한 표현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력을 사용해서 알제리 학살을 암시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혁명이나 전쟁 모두 학살을 피할 수 없는 폭력적 본질을 말하려는 걸까.

 

3.

이 영화는 내용적으로는 쉽지 않은데 프랑스 근현대사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다르가 프랑스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 이해를 전제로 하지는 않았겠지만 영화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면 근현대사를 참조해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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