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혹은 청정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타티의 <윌로씨의 휴가>와 <나의 아저씨>를 고르겠다. <나의 아저씨>는 타티를 대중한테 다가가게 해 준 영화로 아마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을 거다. 하지만 난 어제 처음 봤다! 오프닝에서 비어있는 아스팔트 위를 개 무리가 즐겁게 활보한다. 음악도 옛날 유원지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멜로디다. 뭐가 저렇게 경쾌한가 유심히 들어보니 실로폰(?)에 준하는 투명한 음색이 나는 악기를 사용한다.

 

영화는 당시 직면한 자연주의와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선명한 대조가 주제다. 윌로가 사는 개발 전 동네-파졸리니 영화에서 빈민촌같은 분위기-와 윌로의 여동생 부부가 사는 고급스런 갤러리같은 현대식 집이 주요 배경이다. 두 장소는 시각적으로만 대비되는 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윌로가 사는 동네가 화면에 나오면 음악이 언제나 뒤따른다. 윌로씨가 사는 다락방 건물이 있는 건물, 그 옆에 동네 주민이 모이는 카페, 아침마다 장이 서고 투닥거림이 있다. 활기와 소란의 중간쯤에 음악은 계속 나온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나 있는 길은 주민들의 대화하며 모이는 장소다. 이웃은 사촌이란 말이 어울리는 동네다.

 

반면에 동생 남편은 성공한 사업가로 현대식 동네에 산다. 대문도 버튼으로 열고 닫고, 요리로 버튼으로 작동하는 기계식 삶을 선호한다. 윌로씨가 사는 동네는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데 이 부부네 집이 나오면 음악은 사라지고 기계음의 사운드가 등장한다. 소음을 비롯해서 버튼을 누를 때 과장된 사운드로 청각을 자극한다. 이 부부가 사는 집은 차도 앞에서 커다란 대문으로 안과 밖이 분리된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이 넓은데 이 너른 마당에 통로란 규정을 한다. 잔디를 심고 발을 닿게 콘크리트로 호 모양의 길을 현관까지 만들고 돌바닥판을 만들어 연못 옆을 지나간다. 이 집 구조가 바로 타티가 만드는 웃음의 원천이다. 파티를 연 어느 날, 넓은 공간을 두고 발이 닿아야하는 길 위에서 손님들이 종종 걸음을 치는데, 이는 마치 차가 가득찬 도로를 연상시킨다. 기계 문명이란 게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당혹시키는 때가 종종 있다. 가령, 버튼 도어락은 숫자로 열리고 닫혀서 실수로 다른 번호를 누르면 내 집에 내가 못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누구를 위한 편리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이 부부한테도 이런 일이 있다. 센서로 작동하는 주차장 문을 달았지만 센서 사이를 개가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문이 닫히고 갇혀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센서한테는 개인지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무언가가 센서를 지나갔다는 사실만 중요할 뿐.

 

큰 줄거리 없이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데 물질문명 비판하는데도 이렇게 경쾌할 수 있다니. 이 영화에서도 역시 자동차는 중요한 조연이다. 앞으로  볼 <트래픽>과 <플레이 타임>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할 것이다. 타티 감독의 영화 특징은 롱쇼트다. 프레임 안에 여러 사람들이 무리지어 나왔다 사라졌다한다. 교실 창으로 멀리 있는 운동장에서 무음으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묘하게 반복적이지만 동적이고(음악 탓일 수 있다) 무엇보다 피로하지 않다.

 

덧.  영화 속에 묘사되는 공간이 어디인가 찾아 봤더니 니스 근처에 세트장을 지었단다. 영화 촬영 후 해체되고. 요즘이라면 또 다른 관광지로 꾸며졌을 텐데 볼 수 없다니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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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 1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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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7 1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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