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야기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듯이 인종차별도 그 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긴 역사를 가진 이야기를 다루는건 힘이 들다. 새로워야하니까. 물론 너무 먼 과거라 잊혀진 역사를 소환하는 기능을 하는 장점이 분명히 있긴하다. 그러나 잊혀진 과거 역사 소환에서 그친다면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영화는 과거 인간의 잔인함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적으로는 많이 아쉽다.
이 역시 감독의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셰임>에서도 그랬는데 인물한테 감정이입을 시키게 하는 면이 감독한테는 결핍되어 있다. 이 감독이 관객이 인물과 하나가 되길 바랄 때 음악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잘 못 만든 스릴러 영화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려고 음악을 사용할 때같은 효과를 낸다. 그러니 미리 짐작이 가버린다. 사실 플랫이란 인물의 개인사를 통한 노예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려면 좀 더 플랫에게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고 플랫의 내면을 담아내야했다. 플랫은 누가 봐도 억울하고 학대받을 때는 가엾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인물인데 감독은 이상하게 플랫과 잔인한 주인, 그리고 그 주인이 애정하는 여자 흑인 노예랑 자꾸 삼각구도를 만든다. 차라리 대놓고 삼각구도를 만들고 백인 농장주의 잔혹함과 흑인노예에 대한 애정, 양가적 감정을 좀 섬세하게 다루던지. 여러 가지 감정선을 사용하는데 어떤 감정선도 섬세하게 처리되지 않고 깊이 있게 다가가지 못한다.
노예제 전반을 다루는 걸 포기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부를 잡아서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방법이 좋았을 텐데.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원작이 있어도 영화화 하는 건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다. 책을 바탕으로 해도 어떤 부분을 취사 선택해서 극대화하는 게 영화고 그게 감독의 역량이다. 아무튼 스브 맥퀸 감독이 인물들을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보면 인물들은 이성적으로는 안스럽지만 감정적으로는 별 느낌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