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독이 조지 클루니고, 출연진을 보면 어떻게 극장으로 안 달려갈 수 있는가.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나는 믿는다. <굿나잇 앤 굿럭>에서 연출력을 보면 조지 클루니는 감독으로도 소질있어 보였다. 꼭 주연만을 고집하지도 않고 단역으로도 나오고 독립영화에도 나오고..영화적 행보만을 본다면 조지 클루니는 영화 작업이란 자체에 대한 성실성을 지니고 있고 배우란 직업 의식보다는 영화란 매체를 몹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재미없다는데도 기대를 다 버릴수는 없어서 조금쯤 기대감을 가지고 봤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욕부터 나온다.-.-;

 

2.

의도는 알겠다. 양괄식으로 주제를 배치했다. 2차세계대전 중에 예술품을 지키느라 사람 목숨을 잃는 게 가치있는가, 하는 주제의식에서 출발한 듯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조지 클루니란 바로 이런 사람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훌륭한 배우들이 존재감 없이 밋밋하게 나열되는 건 감독이 모두 떠 안아야할 실패다. 케이트 블란쳇만이 이 영화에서는 살아있는 캐릭터였다. 캐릭터가 잘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케이트 블란쳇이 평면적 인물을 해석한 것으로 보이니 전적으로 케이트 블란쳇의 개인기 덕분이다. 가끔씩 피식 하는 실없는 웃음도 영화 스케일에 맞지 않는 가벼운 대사 몇 마디 탓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이 어울리는 대사들이다.

 

3.

조지 클루니가 던진 화두 예술품은 사람의 목숨과 맞바꿀 수 있나? 어쩌면. 예술은 관객을 필요로 한다. 관객이 없는 예술이 있을 수 있을까? 이조백자, 고려청자가 당시에는 생필품이었지만 미적 가치 기준을 적용해서 예술품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건 그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기준은 자의적이니까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는 사람이 최소한 전제한다는 필요조건이 성립되어야한다. 모뉴멘츠맨의 활약은, 그러니까 후방에 있을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사람들의 심미적 기쁨을 위해 희생한 셈이다. 물론 후세도 그들 덕분에 재로 사라졌을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에 많은 군인들이 후방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사라져갔다면 모뉴먼츠맨들 역시 같은 이유로 사라져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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