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짐 자무쉬 감독의 스타일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키치적이고 미니멀하면서도 꽉 찬 듯한 화면구성. 흑백이든 컬러든, 좁은 닫힌 공간이든 열린 거리든 자무쉬 감독표 스타일이 있다. 이 영화 오프닝은 아찔하게 아름답다. 엘피 판이 돌아가는 장면에 아담과 이브가 머리를 맞대고 표정없이 널브러져있고 음악이 흐르면서 두 사람이 널브러져있는 바닥이 돌아가는 장면이 겹친다. <지상의 밤>이란 영화에서 탐 웨이츠의 <Night on Earth>가 흐르면서 인물이 밤이 내린 거리를 걷는 걸 카메라가 쭉 따라가는데 모든 체세포가 흐물거렸었다. 이 영화의 오프닝도 <지상의 밤>을 볼 때 너무 좋아 체세포가 무기력하게 널브러진 것처럼 또 한 번 널브러진다. 아담과 이브가 디트로이트 밤거리를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 카메라가 거리를 따라가는데 헤드라이트 불빛과 죽어가는 네온사인이 켜진 콘크리트 건물들이 간신히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운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투브에 링컨 센터 필름 소사이어티(Film Society of Linchon Center)에서 올린 프레스 컨퍼런스 Q&A가 있다!-세상 참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링컨 센터에 가지 않아도 짐 자무쉬와 틸다 스윈튼을 볼 수 있다니. 일단은 유투브 만세. 사람들의 눈은 다 비슷한 지 아담과 이브, 이브의 동생 에바가 쓴 가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인모와 염소털, 야크털을 섞어 만든 가발로 사람같으면서도 동물 털의 질감을 살렸다고 한다. 뱀파이어의 사랑 이야기다. 뱀파이어, 사랑, 둘 다 많이 다뤄지는 소재고 같은 걸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 지가 감독이 고민해야할 몫이며 감독의 역량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자무쉬 감독은  뱀파이가 지닌 외형적 전형의 관습을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단다. 침대에서 자고 송곳이가 없다가 피를 마실 때만 살짝 드러난다. 감독은 뱀파이어들이 등장하는 호러 영화가 아니라 수백 년 간 지속된 사랑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뱀파이어는 원래 사람이었고 사람의 다른 형태라는 말을 한다. 그렇지. 기원은 사람이지. 그래서인지 두 연인의 이름도 아담과 이브다.

 

아담과 이브는 얼굴은 창백하고 몸은 길다랗고 머리칼은 독특하다. 뱀파이어들이라 어둠의 세계를 살아가는 공간을 담는다. 디트로이트의 버려진 건물들이 즐비한 넓은 밤거리, 헤시시 문화가 있는 탕헤르의 좁은 골목. 두 공간은 전혀 닮은 점이 없는데도 비슷한 정서를 환기한다. 황량하고 쓸쓸함. 자무쉬 감독이 잘 다루는 정서가 바로 번잡한 도시에 매복해 있는 황량함이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지만 인물들이 외모에서 주는 유약함이 더해진다. 아담과 이브과 비행기를 타고 선글라스를 껴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자는 모습에서 이들의 나이가 수 백 살이고 햇빛에 맥 못추는 뱀파이어란 사실을 잊고 그냥 살 곳을 찾아 고난을 극복해야 슬픈 한쌍의 연인을 만나게 된다.

 

2. 감독은 또 이런 말도 한다. 지성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직관이나 본능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자무쉬 감독의 영화를 보면 계획된 듯하면서도 줄거리의 흐름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아담은 음악을 만들고 이브는 활자 중독처럼 보인다. 오프닝에서 기타의 역사가 나열되는데 나야 모르지만 뮤지션들이나 기타 덕후들이 보면 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카메라에 담긴 모든 미장센과 인물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다.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게 자무쉬 영화의 진정한 감상법이다. 자무쉬 영화들에서 많은 도시들이 나오고 인물들이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 공간 이동으로 고립감과 동시에 낯섦이 주는 긍정적 멜랑콜리가 풍기는데 낯선 환경에서 피어나는 긍정적 멜랑콜리를 격하게 애정한다.

 

 

3. 아담과 이브는 사람을 좀비라고 부른다. 우리한테는 아담과 이브가 좀비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신은 아니지만 인간사를 경험하고 꿰뚫고 있어서 인간의 의도가 담긴 제스처를 좀비스럽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지경. 에덴 동산에서처럼 좀비 세계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이브의 동생 에바는 사건을 일으키고 아담과 이브가 이동을 하게 하는 작인이다. 에바는 아담과 이브에 비해 충동적이고 악가를 아끼고 아담과 책을 애정하는 이브를 속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눈에 절대 가치는 다른 이의 눈에는 속물이고 좀비처럼 보인다는 말도 되겠다. 혹은 다 아는 척하는 하는 나이든 이의 기존 질서는 충동이 미덕인 젊은이한테는 기존 질서가 무의미가 될 수도 있고. 그러나 에바야, 너도 곧 나이들어 충동성과 즉흥성이 속물화될 때가 있을테니  언니와 형부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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