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과도하게 피곤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숙면을 취하다 못해 아예 다리 뻗고 눕고 싶었다. 내려오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야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격하게 애정하는 구스 반 산트님의 영화를 불경한 태도로 감상하다니ㅜ.ㅜ 이런 정도면 재관람을 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재관람 의지를 돋게 하진 않는다. 구스 반 산트님의 감수성을 동경하고 애정하는데 이 영화는 구스 반 산트님의 독특한 감수성보다는 맷 데이먼의 세계관이 조금 더 드러난다고 할까. 영화를 3분의 1정도만 보고 이렇게 단정하다니, 나도 참. 위키를 찾아 봤더니, 원래 이 영화는 맷 데이먼이 감독으로 데뷔하려는 작품이었다고. 맷 데이먼이 시간이 안 맞아 구스 반 산트님이 감독을 했다고.

 

2.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하고도 무언가를 끄적이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제 때문이다. 영화 줄거리는 개발을 앞둔 시골 마을 사람들의 태도와 거대 개발회사의 탈도덕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업윤리에 대해 흥미가 있다. 글로벌이란 개발사의 탈도덕이나 두 얼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다. 현재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이야기니. 초점은 이윤추구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비도덕한 윤리가 아니라 그 부도덕한 기업을 위해 일하는 한 개인의 입장이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우리는 사소한 일에 너무 진지하게 접근한다고 했다. 제과 회사에서 홍보라고 불리는 일은 과자를 많이 팔기 위해 하는 여러 가지 노력이다. 과자 포장에서 부터 과자 모양, 포장지를 편하게 벗길 수 있는 점선에 이르기까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대부분인데 이런 걸 생각해내기 위해 수 많은 토론과 회의가 이루어지고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진지함이 내포되어 있다고 했다. 원시 시대 정글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썼던 인간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다만 그 겉모습이 바뀌었을 뿐이다. 개인은 정글이 아니라 정글을 사 들인 기업의 우리 안에서 자기 자리를 확보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좁은 우리 안에서 누울 자리를 확보하려다 보면 윤리의식 따위는 잊어린지 오래다. 거대 기업이 추구하는 이익을 개인은 왜 추구하면서 갈등을 겪어야하나. 기업은 직원이 퇴사를 하든 해고되든 거기에 있다. 한 개인의 양심이 기업을 흔들 수 있나?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양심이 승리하는 판타지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을 위해 일한 스티브가 잊고 있던 윤리 의식을 깨우는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다. 자신이 다른 이들을 속이고 설득할 때는 괜찮고 기업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속일 때 비로소 잊어버린 소중한 걸 깨닫는다. 추상적인 일이 자신의 일이 되는 순간에 구체적으로 느끼는 인간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스티브(맷 데이먼)이 글로벌 기업에 속은 걸 알고 자신의 양심을 찾기로 하고 회사를 떠나도 멋지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가 원래 선한 사람이었고 본성을 갈망해 선한 사람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속지 않았다면 그는 갈등없는 회사의 부당한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계속 있었을 거라고 뒤집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그는 존경받을 이유가 없다. 개과천선한 개인을 나는 왜 비난하는가. 기업을 비난해야지. 기업을 비난하는 일은 쉽다. 내가 그 기업에 속하지 않았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기도 쉽고. 하지만 기업의 구성원은 개인이고 각 개인은 각자의 삶과 일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스티브의 동료 프랜시스 맥도맨이 이런 말을 한다. "일은 해야할 일일 뿐"이라고. 그녀는 일을 끝내고 빨리 돌아가서 아들을 돌봐야한다고. 나도 역시 프랜시스 맥도맨의 태도로 일을 대한다. 그러다가 가끔씩 감상적인 스티브가 돼서 사회적 정의에 어긋나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면 잠깐씩 괴로워하다 다시 일은 일일 뿐이라는 태도로 빨리 돌아온다. 프랜시스 맥도맨의 말은 진리고 이렇게 프랜시스 맥도맨의 말에 공감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스티브의 감상적 태도마저도 삐딱하게 보는 태도도 마음에 안 든다. 직업윤리란 걸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들고 안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들고. 밥벌이란 게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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