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데이먼이 게이로 나온다니, 믿어지지 않으니 직접봤다. 나는 맷 데이먼을 싫어했다. 미국청년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하나. 그러다 뒤 늦게 <굿 윌 헌팅>을 봤다. 벤 애플렉과 공동 시나리오를 썼는데 거기서 맷 데이먼이 하는 대사 중에, 미국역사를 알려면 하워드 진을 읽어라, 가 있다. 하워드 진은 미국 역사를 민중의 관점에서 다시 서술한 분이다. 보통 역사가 소수 승리자의 기록인데 하워드 진은 패자인 다수의 관점에서 역사를 썼다. 맷 데이먼이 이 대사를 썼는지, 벤 애플렉이 썼는지 확인 할 길 없지만 이 대사를 맷 데이먼이 했다. 나는 이 때부터 맷 데이먼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맷 데이먼보다는 마이클 더글라스가 더 인상적인 영화다. 마초 역할을 해 왔던 이는 더 이상 없고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배우를 보는 것 같았다. 리버라치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리버라치의 삶을 요약하면 요즘 기획사들이 길러내는 아이돌 시스템의 전신쯤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원래 피아니스트였나본데 1인 뮤지컬처럼 쇼도 하는 그야말로 엔터테이너. 사실, 나는 가수는 콘서트에서 노래를 해야지 퍼포먼스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자다. 리버라치, 혹은 퍼포먼스 중심의 엔터테이너의 쇼를 즐기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의 큰 볼거리 중 하나로 그런 쇼를 살짝 재현하는데 재미는 없다.
영화의 포인트는 리버라치의 연인 스캇(맷 데이먼)과의 관계가 피어나고 스러지는 걸 보는 거다. 리버라치는 스캇한테 첫 눈에 반하지만 스캇은 리버라치한테 움찔한다. 스캇은 원래 게이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 게이(본인은 양성애자라고 한다)가 된다. 처음엔 그저 리버라치가 제시하는 안정된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서로 취직을 하지만 곧 리버라치의 연인이 된다. 처음에 리버라치는 스캇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지만 스캇은 리버라치의 마음이 떠날 정도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닫는다. 리버라치는 자신의 전부라고. 리버라치는 스캇을 길들였다.
제목이랑 작가를 기억해내려고 아무리 애써도 기억이 안나는데,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담은 소설이 있다. 남자를 만나기 전 여자의 머리 속은 이데올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맑스를 읽던 시간에 남자한테 만들어줄 스파게티 소스 레시피를 읽고 이데올로기로 가득 했던 머리 속은 남자가 뭘 좋아하는 지로 가득차게 된다. 이렇게 사랑은 상대를 길들인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스캇은 리버라치를 만나기 전의 자아를 잊고 리버라치의 취향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는 찾아오는 이별. 사랑에서는 왜 파국이 존재하는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상대의 취향대로 살기 때문인데 상대의 취향대로 살아도 행복한 게 사랑이라고 리버라치가 영화 중간 중간에 노래를 한다.
두 사람이 동성이라서 그렇지 이성간에 사랑의 생성과 퇴락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사랑 후 찾아오는 게 우정이 아닐까. 리버라치는 스캇을 버렸지만 죽음과 친구해야하는 순간에 스캇을 찾는다. 두 사람 사이에 애증은 시간 덕분에 바래고 한 때 서로를 지탱해줬던 우정이 남는다. 그래서 사랑보다 우정이 힘이 세다고 나는 믿는다. 살아남는 게 강한 거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