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체는 지루한데다가 길었다. 런닝 타임을 확인 안 해서 영화보는 동안 몇 번이나 시계를 봤는지 모르겠다. 반 고흐 말년을 다루는 영화다. 오베르 쉬르 와즈 시절인데 영화가 좀 산만하다고 해야하나. 가령 (아마도) 몽마르트에 있었던 유곽 씬인데 고흐를 사랑한 가쉐 박사의 딸이 고흐를 찾아 파리로 밤에 왔다. 둘이 재회한 장소는 바로 이 유곽인데 필요 이상으로 캉캉 춤이라든가 행진춤을 스페터클화 한다. 주요인물을 다락방에 쳐박아두고 흥겨운 장면을 꽤 길게 보여주는 지 의아하다. 등장인물도 너무 많이 등장하고 비중도 엇비슷해서 깊이감이 없다. 영화 초반에 가쉐 박사 가족과 만남을 묘사한 거 보면 피알라는 반 고흐와 가쉐 박사 딸의 로맨스를 다루고 싶은 거 같기도 하다. 하여튼 이 영화, 좀 많이 이상하다. 인물의 정사씬은 단추를 잠그는 걸로 끝내고 테오의 아내가 목욕하는 누드 씬을 내보내고. 맥락이 안 맞는다. 맥락이 꼭 안 맞아도 그럴듯해야 하는데 내키는대로 영화를 만든 거 처럼 보인다.
고흐만큼 현재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화가가 또 있을까. 당대에 길에 내놓아도 안 가져가던 그림을, 우리는 감히 소유할 엄두를 못내고 달력으로, 컵으로, 마우스 패드로 소유하려고한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봤으면 고흐는 기뻐했을텐데... 테오의 아내는 인정받지 못한 화가는 생계를 위해서 그림을 그만 그려야한다, 누구나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다, 살아야하니까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일한다, 고 한다. 그래 그렇지. 버지니아 울프는, <로마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이 유산상속자가 아니었더라도 로마 쇠망사를 쓸 수 있었을까, 하고 의문을 던졌다. 삶을 송두리째 잃지 않기 위해서 노동은 필요하다고 했던 까뮈도 있다. 그러니까 밥이냐 예술이냐는 과거에도 현재도 마찬가지 고민이다.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먹고 그저 한가하게 취미생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자신도 일을 하고 있다는 걸, 테오한테 구구절절하게 이해시키고 싶어하는 대목들에 울컥한다.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모든 이는 예술가라고 일반화해도 되지 않을까. 타협 없는 하나의 목적 의식이 사람을 어두운 고독의 심연으로 이끄는 건 분명하다. 그 고독의 심연이 없이는 예술 또한 없었을 테니. 예술을 감상하는 이는 다른 이의 고통을 즐기는 새디스트의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