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아자니의 <까미유 끌로델>이 로댕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반면 브루노 뒤몽 감독의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과 헤어진 후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안 나오자 가족들이 끌로델을 정신병원에 보낸다. 아마도 수녀원이 운영하는 이 병원에서 지내는 생기 잃은 까미유 끌로델의 내면을 묘사한 영화다. 로댕과 끌로델의 결별 이유를 회자되는 것만 알고 있어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뒷 이야기가 궁금한데 누구 아시는 분! 브루노 뒤몽 감독은 실험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편인데 이 영화는 비교적 차분하다. 끌로델은 동료(?)들 속에서 태연히 행동하다가도 터질 거 같은 감정 기복으로 울음을 터트리곤 한다. 줄리에뜨 비노슈의 곱게 나이 들어가는 클로즈업이 종종 등장한다. 어제 영화 보면서 딴 생각 많이 해서(근데 무슨 생각했는 지, 지금은 기억나질 않는다) 공감하는데 실패했다. 아니 어쩌면 딴 생각 안 했어도 뒤몽 감독의 영화를 보고 공감 같은 걸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까미유 동생인 폴 끌로델은 까미유의 창의적 기질, 혹은 자유분방한 기질과 대립된다. 신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등장과 사라짐 모두 갑작스럽고 감독이 불친절하게 배치해서 당혹스럽다. 남매 간 혹은 가족사의 배경을 몰라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보인다.
뒤몽 감독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양반이 워낙 독특하셔서 정서적인 부분보다 영화의 형식적 면에 더 무게 중심을 두며 보게 된다. 끌로델의 내적 감정의 소용돌이에는 공감 가지 않지만 끌로델의 감정의 파도를 묘사하는 미장센 사용 방식에는 격하게 공감 간다. 수도원으로 쓰였을 돌로 된 육중한 건물. 남부 지방인데도 자연광을 거의 배제해서 영화 전체는 회색의 무채색 톤으로 진행된다. 등장 인물들의 옷 역시 검은 색이나 무채색 계열로 지치고 지친 까미유의 마음 한자락 같다. 까미유가 이따금씩 숨통을 트러 건물 밖에 나와 벤치에 앉아 광합성을 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그때마다 회색 벽은 배경일 뿐인데도 까미유를 감시하는 것처럼 뒤에 떡 버티고 있다. 돌로 만들어진 빛이 들면 멋스러울 건물을, 아주 차갑고 스산하게 담는다.
또 하나 뒤몽 감독한테 강하게 끌리는 점은, 바람을 잡는 기술이다. 이 영화는 남부여서 미스트랄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 영화, <휴머니티>에서도 끊임없이 바람이 인물들의 대사 사이에 끼어 있어서 성가시게 굴었다. 바람은 격정적이면서도 난폭해서 화면 속 비물질적 요소한테 폭력성을 느끼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이 영화에서도 까미유가 낙담할 때, 뒷모습을 비추며 바람이 까미유의 걸음과 친구 삼아 같이 간다. 날씨를 이루는 요소 중, 바람이 제일 싫은데 뒤몽 감독의 영화를 보노라면 바람도 표정과 목소리가 있어 저런 바람은 어디서 찾나, 궁금하게 느끼곤 한다. 많은 감독이 빛을 담는데 고심하는데 뒤몽 감독은 바람을 담는데 고심하는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