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랜드 -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
에드윈 애벗 지음, 윤태일 옮김 / 늘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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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하다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참 오묘한 책이다. 더불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하다. 다각형의 세계를 의인화해서 줄거리를 이어가는데 정말 신기하다. 플랫랜드, 즉 평면 세계에서 다각형의 계급 세습과 각 도형이 사물과 현상을 보는 법에서 시작한다. 가장 밑에 있는 계급 이등변삼각형에서 성직자 계급인 원까지. 그리고 계급이 높을수록 후손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변을 가지게 된다. 평면세계에서 선분만으로 신분이 인식될 때 다각형을 구별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화자는 정사각형으로 나중에 3차원에서 온 구를 만난다. 원은 다각형이다. 변이 너무 많아서 그 각을 눈으로 알아차릴 수 없을 뿐인 다각형. 정사각형의 말에 따르면 원과 차원이 다른 완전체로 묘사한다. 플랫랜드에 살던 사각형한테 높이라는 개념은 획기적이다. 높이를 의미하는 "위쪽으로"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3차원은 21세기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시간의 상대성도 당연하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19세기고 빅토리아 시대란다. 빅토리아 시대를 좀 찾봤더니 전원적 삶의 패턴을 희생해서 산업적, 물질적 풍요를 얻은 시기로 물질적 팽창과 정신적 성숙의 괴리가 심했던 과도기적 시기라고. 이 책은 그래서인지 알레고리로 가득 차 있다. 먼저 계급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고 사회적 차별이 일으킬 커다란 파장을 우의적으로 말한다.

 

"우리 플랫랜드에서는 여자들 거실에서의 신학과 다른 곳의 신학이 완전히 다릅니다. 언어와 사고에서 이렇게 이중 훈련을 하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어떤 때는 너무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까 나는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특히 그들이 세 살이 되어 엄마의 보살핌으로부터 떼어질 때, 옛날에 배웠던 언어를 잊어버리고 과학의 어휘와 숙어들을 배울 때 그러합니다. 3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더 영민했던 지적 능력과 비교해 보면, 현재 우리가 수학적 진리를 파악하는데 더 취약하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어떤 여자가 대중적인 책 한 권을 정독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성(=여성)에게 은밀하게 전달할 때 일어날 위험성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남자 아이의 경솔함이나 불순종으로 인해, 그 어머니가 논리적 변증의 비밀을 알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의 지적능력이 약화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도, 나는 여성교욱의 통제에 대해 재고해 볼 것을 고위 당국자에게 조심스럽게 건의하는 바입니다."(105)

 

정사각형이 다른 세계, 즉 3차원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으로 우선 저항하고 다음에 감탄한다. 절대적인 게 없는 시기로 넘어가는 시점인데 정사각형이 미지의 세계에 대해 설득한 힘이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은 빅토리아 시대나 플랫랜드의 시민만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새로움이란 게 어떤 유형의 것이 아니라 가치나 습관, 인식같은 무형의 것을 전복해야할 때 더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과 2 사이에 실제로는 무수한 수들이 존재한다. 수의 개념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다시 수 개념은 1과2 사이에 존재하는 수들에 대해 모두 잊고 플랫랜드 시민들처럼 기존의 인식법으로 사물과 현상을 대하는 요요현상을 겪는다.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인식법에는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수의 문제만이 아니라 다차원을 요구하는 일에서도 단순화 시키려는 기질이 작용한다. 앎과 행동이 일치할 수 없고 한 때 정사각형처럼 그 괴리를 고민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고민도 엷어지고 플랫랜드에 주저앉고 마는 거 같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뭐하나, 하는 자조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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