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한테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가끔은. 그러나 대체로 사람은 사람한테 위안이 안 된다고 믿는 편이다. 순간순간 누군가한테서 위안을 받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관성의 법칙대로 인간은 잠시 떠났던 외로움이란 제자리로 돌아온다. 고독에 관한 고찰이 사랑에 관한 고찰만큼 많이 이루어지곤 하는 이유가 이런 인간의 변덕스런 속성 탓이 아닐까. 암묵적으로 인간이 나약하다는데 동의하지만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르짖는 현대에서 자신의 두 발로 버텨보려고 한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서있으려면 무언가 최면이 필요하다. 중독자는 알 것이다. 자신이 왜 어딘가에 중독되는지. 알코올, 마약, 섹스, 쇼핑, 게임, 도박 등등. 사실 누구나가 일정 정도 중독자다. 중독을 바라보는 자신과 타인의 시선이 일치할 때만 우리가 중독자라 부르기로 사회적 합의를 봐서 그렇지.

 

브랜든(마이클 패스빈더)은 겉보기에 멀쩡하다. 즉 사회적 합의로 중독자라 부르기에는 일상의 외줄타기에서 균형을 잘 유지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안다. 일 하는 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말초적 쾌락 중추를 만족시킨 후 찾아오는 커다란 블랙홀을, 그는 감당할 길이 없다.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위는 높아지고 그 후에 찾아오는 블랙홀은 점점 더 커진다. 자신의 몸을 학대도 해 보고 밤거리를 달리며 울며 소리도 쳐보지만 무서운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아주 잠깐, 대화가 통하는 여인을 만나 정신적 교감에서 위안을 찾을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중독에 쩔어있는 육체는 정신을 지배한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고 잠깐 희망이란 걸 맛 보았던 정신은 더 괴롭기만하다.

 

이 영화에서 브랜든의 고뇌의 뿌리는 정신적 외상에 있다. 아마도 친동생인 씨씨와의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일 수 있다. 영화에서는 모호하게 처리되지만 아마도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금지된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오빠와 여동생의 격렬한 육체적 학대. 육체를 학대해도 다친 영혼은 치유되지 않는다는 아주 우울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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