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처럼 <벌이 날다>로 민병훈 감독을 기억한다면 이 영화는 다른 이가 만든 영화같다. 극한 인내심을 요구했던 롱테이크에 대한 애정이 이번에는 롱테이크의 대척점에 있을 수 있는 핸드핼드다. <벌이 날다>에서 탈내러티브를 지향했다면 <터치>에서는 지나친 내러티브로 전향(?)이다. 동식(유준상) 수원(김지영)은 부부란 관계를 형성하지만 두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동력으로만 작용을 하한다. 두 인물은 각각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끌고 나간다. 일반적으로 극이 주인공이 주인공 주변 인물들한테 행동하는 작인을 찾는 거에 비하면 굉장히 독특하다.

 

2. 어찌보면 두 인물 이야기다. 아주 현실적인 동식과 판타지적인 수원.

2-1. 동식은 알코올 중독자다. 한 때 아시안 게임에 사격 대표선수 출전했었지만 현재는 고등학교 사격 코치다. 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아마도 술에 의존하게 되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데 영화는 동식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결심과 번복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사회 생활이란 게 어디에나 술 한 잔의 유혹이 있다. 술을 끊기로 결심한 동식한테 술 한 잔은 엄청난 내적 갈등의 요소다. 처음에 몇 번 거절하다 결국에는 이성을 버리고 술한테 달려들면 술을 그의 영혼을 잠식하다. 다음 날 술이 깨면 일어났던 일들은 지옥과 같은 일이다. 음주 운전으로 마지막 시퀀스에서 사람인지 노루(?)인지를 치는 장면에서 나는 절망스럼 탄식을 내뱉었다. 영화가 희망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동식이 술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을 지, 동식을 믿지 못하게 된다.

 

동식이 왜 극도로 현실적 인물인가 하면, 우리의 모습이 들어가 있는 탓이다. 자신의 잘못과 나쁜 습관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주변인이 내 잘못을 지적할 때면 멋적게 분노하거나 아니라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동식이 그런 것처럼. 사람은 감정적 유기체라 이성이 기거하고 있는 동안은 정말 그렇지만 이성은 종종 변덕을 부리고 유기체 밖으로 이탈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하고 다짐하고 다시 실수를 반복하는 주기로 생을 채운다. 동식을 보면서 내 모습 한 부분을 보는 느낌.ㅜ.ㅜ

 

2-2. 수원. 수원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생계를 위해 도덕적 죄를 서슴없이 범하지만 사회 부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냉담한 사회적 시선 속에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한 모자의 삶을 우연히 목격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목격 후 잊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수원은 모자의 삶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상의 비정함은 수원을 허둥대며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지독하게 잘 묘사된다. 집, 병원이란 닫히 공간, 수원이 사는 동네는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나 있다. 수원은 영화 대부분을 닫힌 공간에서 혼자 헤맨다. 때는 여름이라 땀으로 젖은 머리칼, 목덜미와 수원을 불안하게 뒤따르는 핸드핼드는 수원의 고립을 가중시킨다. 세상과의 유일한 끈이 핸드폰인데 극한 상황에서 수원이 찾는 이는 사제다. 사제한테 수원이 퍼붓는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감독은 끝까지 종교를 부정하진 않는다.

 

3. 두 사람을 통해 나는 구원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구원이란 과연 있나? 구원의 의미란? 영화는 다행히 일말의 희망을 남기면서 끝난다. 하지만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신은 절대로 구원을 행할 수 없다.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진 않지만 신이란 존재는 내 마음에 따라 있다가 없다가 한다.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나는 신의 뜻이라고 체념하고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빨리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영화 속처럼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는 신을 찾는 건 어리석다. 실체 없는 관념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살과 피로 이루어진 물질계를 살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구원은, 그러니까, 어떤 때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다리가 썩어가서 혼자 죽어가는 이의 고통을 중단시키는 일도 신의 이름을 빌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수원과 동식은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발버둥치는 실존적 인물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게 편하지 않다. 수원과 동식의 삶을 통해 내가 나를 구원해야한다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고 구원을 위해 고군분투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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