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는 미국영화답긴 하지만 독립영화 답게 진짜 감정을 어루만지는 면도 있다. 그래서 눈물을 좀 흘렸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조금만 감성을 건드려도, 주책맞게 눈물이 난다. 내용은 한 줄로 요약하면 간단하다. 소아마비로 전신마비가 된 한 남자의 섹스 라이프와 사랑이다. 감독도 소아마비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일반인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섬세한 부분을 잡아낸다. 가령, 쇼핑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전신이 마비돼서 누워서 세상을 보는 남자한테 옷쇼핑이란 어떤 기분일까. 카메라는 남자의 눈높이에서 옷을 바라보고 관객은 남자와 같은 각도로 옷을 바라보게 된다. 카메라의 각도가 남자의 눈높이에 있기 때문에 늘 누워서 일정한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체험을 하게 된다. 두 시간 동안 일어나는 불편함을 기꺼이 즐기지만 평생이라면, 생각하기도 싫다,는 유아기적 상상으로 결론을 맺는다.

 

2. 이 영화를 보고 그저그런 미국영화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감독이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캐릭터 모두 자신만의 고유 위치가 있다. 실재 속의 우리가 그런 것처럼. 현실 속의 우리는 아주 정해진 틀 안에서 생활하고 사고 한다. 다만 우리 모두 정해진 틀을 가졌다고 인정하지 않거나 깨닫지 못할 뿐이다. 영화 속 인물들 모두 자신만의 영역이 있고 감정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섹스 테라피스트이다. 이런 직업이 있는 지 영화를 보고 알았고 별 직업이 다 있네, 하는 일차원적으로 반응이 먼저 나온다. 직업 세계 탐구가 아니니 이색 직업에 대한 호기심은 좀 접어두자. 이 테라피스트는 장애우들의 성생활을 활성화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그래서 제목이 세션이다. 세션마다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은 정이 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미운 정, 고운 정하는 말을 사용한다. 두 사람은 고운 정이 든다. 원만한 가정이 있는 한 여자가 일 때문에 만나 흔들리는 과정을, 정말 직업적 단정함을 가지고 담아낸다. 사람의 감정은 재단할 수 없기에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사람이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란 연구가 있어도 대부분은 제도권이 인정하는 이성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착각한다.

 

많은 영화들이,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한 눈에 반한 사랑을 다룬다. 비운 밥 그릇 수가 좀 많아지면 한 눈에 반한 사랑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알아버린다. 이 영화는 한 눈에 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오늘 저녁 같은 가랑비에도 우산을 안 쓰고 오래 맞으면 옷도 젖고 신발도 젖는다. 시인인 남자를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 남자의 육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정신세계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수다스럽고 혈기왕성하다. 그의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그를 매력에 조금씩 빠져든다. 그리하여 그는 생전에 세 여인의 사랑을 받았다.

 

3.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남자의 욕정을 곁에서 중계방송 듣는 이가 있으니, 교회 신부다. 신부는 남자의 정신적 갈등을 고해성사라는 이름으로 듣게 된다. 교회의 상징인 신부는 등장은 사랑의 정의를 에둘러말한다. 즉 사랑의 완성은 정신적, 육체적 결합이라는 걸. 이건 감독이나 이 책을 쓴 마크 오브라이언이란 사람의 개인적 믿음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4. 1월에 두 번째 본 영화인데 영화를 보니, 삶이 좀 나아진 거 같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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