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낯 간지러워서 안 보려고 했다가 한 후배가 강추해서 봤다. 많은 멜로 영화가 남성 감독의 시선으로 제작되고 남자가 꿈 꾸는 환상을 온통 여자에 넣어두거나 혹은 여성 관객을 겨냥해서 비현실적인 남성상을 마구 남발하는 거에 비하면 이 영화는 아주 훌륭하다.

 

시선이 마고란 여성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점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여자가 꿈 꾸는 남성상이라든가 모든 남자가 꿈 꾸는 여성상이란 전형에서 탈피한다. 결혼 5년 차인 마고의 남편은 곰돌이 푸같은 체형에 닭요리 레시피를 개발하느라 매일 주방에 있고 그 외에는 마고와 농담을 주고 받는다. 마고는 평범한 남편을 사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앞 집 총각을 흠모하기 시작한다. 현재 생활에 별 불만 없는데 갑자기 또 다른 사랑이 막을 수 없는 재채기처럼 찾아온다.

 

내 이의 제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감독은 삼각 관계에 빠진 세 인물의 심리를 이성적이고 잔잔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잡아낸다. 마고가 남편과 춤을 추는 장면이나 결혼 기념일에 극장에 데려다주면서 세 사람이 있는 장면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같은 게느껴지니, 영화는 좋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고 삶은 삶이다. 결국 사랑을 택한 마고가 나중에 전남편을 만나서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다. 루(마고의 전남편)는 놀랍게도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루의 말을 백만 배 이해한다. 이 영화가 세 사람의 심리를 잘 다루는데도 난 별로 재밌지 않았다. 많은 영화와 책에선 사랑(특히 이성 간에)이 없으면 세상이 종말하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사랑이 없어도 사람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밥으로 채울 수 없는 어떤 허기가 이따금씩 찾아오기는 하지만 곧 잊게 된다. 알 수 없는 허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아주 익숙해져서 나는 아주 잘 살고 있다. 감정의 허기에 우선 순위를 매기는 멜랑콜리에 나는 동조할 수 없게 됐다. 나는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믿는다.  

 

마고는 금기된 사랑과 단 하루 밀회를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어둠 속에서 커다랗게 음악이 나오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놀이기구가 멈추고 음악이 멈추고 주변이 밝아지자 미소는 황망함으로 바뀐다. 마지막 장면에는 마고 혼자 놀이기구를 탄다. 왈츠를 함께 추려고 상대의 손을 잡았지만 왈츠곡이 끝나면 다시 재투성이 부엌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마고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난 마고의 용기를 질투하는 걸까. 마고도 행복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데 한 표를 거는 거 보면.

 

*영화 데이터 베이스가 부활했다. 언제 했지? 아무튼 좋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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