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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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열혈독자로서 이 에세이는 의미가 깊다. 역시 위화는 이야기 꾼이다. 시류를 다룬 에세이지만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해서 거시적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논리력까지 두루 갖춘 위대한 작가다. 작은 에피소드들을 톻해 위화의 인물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준 긍정의 힘과 해학에 대륙적 기질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위화의 철학이 일등공신이다.

 

위화는 문화대혁명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어제의 친절한 이웃들이 오늘은 모두의 적이 되어 타도 대상이 되고 죽기도 한다. 한 나라의 역사는 한 개인의 역사를 통해 반추할 수 있기에 위화의 이웃들 이야기는 중국 근대사를 이념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아준다. 위화의 허구 속 인물들은 유독 많이 죽고 초기 작은 아주 어두운데 그 열쇠가 위화의 유년기에 있었다. 한 개인의 경험을 살을 붙여 보편적 공감으로 끌어내는 데 위화의 위대함이 있다. 어린 위화가 본 문화대혁명은 이념적 혁명 이전에 개인에 대한 억압과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한다. "마오의 말씀"은 기존의 사실도 뒤집을 수 있는 위력을 지녔고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세뇌당한다.

 

읽으면서 문화대혁명기는 그저 남의 나라일 같지 않은 게 나 역시 군부독재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다. 극장에서도 애국가가 울리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손을 가슴에 올리는 의식을 따라야했다. 학교 운동장을 지나가다가도 국기 게양식 시간에 걸리면 걸음을 멈추가 태극기가 올라가기를 기다려야했다. 그 시간은 어린 내게는 아주 지루한 시간이었고 영문도 모른 채 애국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국민교육헌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송하는 걸 담임 선생님한테 확인받아야했고 애국가 사절을 모두 외어서 쓰는 시험을 봐야했다. 이런 일들이 초등학교 1,2학년 때의 일로 영문 모르는 일이 참 많았다. 어느 날은 갑자기 모두가 학교에서 우유급식을 해야했고(지금 보면 우유가 남아서) 또 어느 날은 도시락에 보리를 섞었나 검사를 하기도 했다(쌀이 부족한 해였다). 또 어느 날은 단팥빵(내가 싫어하는) 급식을 먹어야했다. 어린 내게는 이런 일들이 귀찮고 왜 먹기 싫은 걸 먹어야하나 였지만 한국 현대사 속에 문화대혁명을 능가하는 억압의 시기가 존재했다.

 

위화는 내 유년의 기억을 소환할 뿐 아니라 현재 현재 한국 상황까지도 돌아보게 한다. 속도전이나 모방에 대한 욕망이 국경을 초월해 일어나고 있는 전지구적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아가 인간의 본성은 대동소이한 탓이기도 하다. 후반부에는 중국의 현재 사회상을 위화식으로 말하는데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산당이 이끈 지난 60여 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중국의 풀뿌리 계층에 거대한 기회를 두 차례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문화대혁명은 정치권력의 새로운 분배라고 할 수 있고, 개혁 개방은 바로 경제권력의 재분배였던 셈이다."(287)

 

의미심장한 말인데 한국으로 치면 군부독재가 끝나면서 문민정부로 접어들고 시장은 자유주의로 넘어가면서 정신적 가치가 존재를 상실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형제>에 보면 고물장수가 거부로 거듭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부의 축적에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윤리가 생성된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는 사회로 역행했지만 이를 퇴행이라고 보는 이는 웃음거리가 된다. 모든 비극은 이 가치 변화에서 파생되지만 그 누구도 가치를 바로 잡는 일에 선뜻 앞장서려하지 않고 일반적 가치에 뒤처질까봐 전전긍긍한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한때 유행했지만 진정한 사유의 깊이까지도 유행했는지는 의문이다. 어떠 사상도 한국에 들어오면 소비 형태로 들어와 우르르 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는 뭐든 우리식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잡식성 취향으로 무장한 참 놀라운 민족성을 지녔다.

 

어찌보면 행복은 마음 속에나 카르페디엠 같은 말은 실은 분명히 존재하는 계급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자본주들의 상술일 수도 있다. 발화를 막는 것 자체가 통제며 억압인데 문명이 발달하다 보니 교묘하게 통제를 한다. 행복이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그럴 듯한 말은 모든 구조적 문제를 내 탓이오, 하는 종교적 색채를 담고 있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는 게 아니며 현재를 즐기려면 미래가 불안하지 않는 사회적 구조가 필요한데 이런 담론 조차도 원천봉쇄하는 대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살 수 있는 게 계급평등이라고 주장하는 광고 홍수 속에서 우리는 최면이 걸린 채 살아간다. 열심히 영혼을 파는 노동의 대가로 카드값을 지불한다. 유한한 휴가를 떠났다 돌아오면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데도 부질없는 희망을 품은 채 휴가를 떠났다 돌아와서 현실에 더 낙담하곤한다. 요즘은 휴가를 즐기는 것도 피곤하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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