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학 편지 -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 이론
프리드리히 실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먼아트 / 2012년 5월
평점 :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오묘한 책이다.
1. 첫째, 내 주문 동기도 오묘했다. 지난 달에 '루브르 전' 평일 관람권을 준다기에 주문했지만 루브르 전 관람권은 얻지 못했다. 2만원 이상 구매인데 내 대충대충 하는 성격 탓이지만 복잡하게 레이아웃을 해 놓고 2만원 이상 구매 시란 말은 보기 쉽지 않게 넣어 놨다고 우길테다. 이런 경로로 손에 넣었지만 좋은 책이다.
2. 책 구성도 굉장히 산만하다. 실러의 미학 이론을 돕기 위해서라면서 앞 부분에 옮긴 이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줄거리를 자세하게 적어 놨다. 소제목은 "미적 가상 체험을 위해서"라고 적혀 있지만 책을 읽은 후에도 겨울 나그네와 실러의 미적 가상 체험과의 함수 관계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옮긴 이처럼 나도 <겨울 나그네> 곡 절반 정도를 다운 받아 차분히 들어봤다. 실러와는 아무 상관없더라도 <겨울 나그네>를 음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 뒷부분에는 <겨울 나그네> 전곡의 가사가 한국어와 독어로 표기 되어있다. 옮긴 이의 바람대로 실러에 관심이 없어도 <겨울 나그네>만을 아는 것으로도 소득이다.
3. 이 책은 실러가 자신을 후원한 귀족에게 쓴 편지 모음이다. 주제는 인간의 미적 교육인데 미에 관한 교육이 아니라(사실 나는 실러의 미학 이론인 줄 알고 주문했다) 어떤 인간이 미적인 인간인지에 관한 소고다. 칸트의 후예답게 반듯하다. 그리고 칸트의 후예답게 우리와는 거리가 있는 이상론을 말한다. 마키아밸리가 후원자에게 빚을 갚기 위해 <군주론>을 쓴 것에 비하면 독일인들의 정서는 범접할 수 없는 단정함이 있다. 히틀러같은 광인도 같은 독일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4. 읽은 지 너무 오래되서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 안 나고 실러의 미학 이론보다는 다른 생각을 좀 적어보려고 자판을 두드린다. 한때 창작자로서의 삶을 강하게 갈망하던 적이 있다. 세상 물정을 좀 알고 난 뒤라 금새 포기했지만 그 갈망은 흔적은 누추하게 마음 한켠에 늘 있다. 재능도 없는데 게으르고 시선도 무뎌져서 창작자로서의 삶을 살 그릇을 못 지니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창작자 주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의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최근에 해 봤다. 재능 없는 이가 재능 있는 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한테 작지만 물질적으로 창작할 여건을 후원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내가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게 아니라 내가 매달 사용하는 카드 값의 일부를 의미있는데 사용하고 싶단 이기심이 먼저일 수도 있다. 헤이리나 전주에 레지던스 제도가 있는 걸 봤는다. 그런 형태도 좋겠지만 내 앞가림도 해야하므로 창작의 삶을 절실히 원하는 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걸 지원하는 형태도 좋을 듯 싶다. 그렇게라도 창착하는 이의 삶의 부분에 꼽사리 끼는 것도 영광일 것 같은데...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이다. 실러의 고운 마음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