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다. 이 영화도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다. 세 아들이 있는 노무사가 자신이 소유한 성을 나눠주고 은퇴하려고 한다. 첫째와 둘째의 달콤한 말은 노무사를 흡족하게 했고 세째 아들은 삐딱한 언사는 노무사의 노여움을 사서 추방당한다. 성을 각각 하나씩 물려 받은 두 아들은, 곧 더 큰 영토 확장을 위해 서로 싸우고 둘째 아들은 첫째 아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추방한다. 노무사는 무기력해지고 그 순간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줄을 놓아 버린다.
나는 무사이야기를 안 좋아한다. 아무리 영화가 뛰어나도 그 잔인함을 지켜보기 힘겹기 때문인데 <란> 역시 보는 동안 아름답고 아키라 감독의 철학을 이해하지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무사 문화라는 게 뭔가. 잘은 모르지만 이 영화 속에서도 이야기 되지만 칼로 타인의 목을 베어야 자신의 목을 지킬 수 있다. 두 아들들의 며느리는 아버지가 성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죽인 이들의 딸들이다. 이들은 가족을 죽인 원수의 아들과 결혼을 한 것이다. 당시 풍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잔인한 거 같다. 첫째 아들의 아내는 원한을 동력 삼은 야심가로 그 가문을 몰락시키는데 일조하고 둘째 아들의 아내는 체념형이다. 부처를 섬기며 모든 걸 용서하겠다는 성품의 소유자지만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배치되면 모두 목을 베어야하는 게 무사 문화고 살고 있던 성이 적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놓이면 남자건 여자건 할복을 해야하는 거친 문화가 배경이다. 나는 이런 배경에 매력을 거의 못 느낀다. 교토 성에 갔을 때 과거 무사 문화의 핏빛은 없고 고요하기만 했지만 꾀꼬리 마루라는 것에서 핏빛을 느꼈다.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마루인데, 성에서 살아간다는 건 늘 암살 혹은 공격의 위험을 옆에 두고 사는 거란 걸 짐작하게 되는 그 마루를 걷는 게 끔찍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 영화는 잘 보는 편인데 뭐가 다른가. 시각적으로 칼 때문인가, 아님 그냥 일본 무사 문화는 싫다는 무조건적 반사작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