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추워서 못 자고 여름에는 더워서 못 자는 집에 살고 있는 한 젊은이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저택을 보며 그들이 사는 천국에 분노해서 아이를 유괴해서 돈을 요구한다. 저택 주인의 아들이 아니라 실수로 운전기사의 아이를 납치한다. 집주인은 자신이 모은 전재산을 줄 의무가 없지만 도의적으로 아이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처한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운전사의 아이를 구하는데 자신이 평생 일군 것을 모두 바쳐야하는가. 누구라도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만 하루 동안 긴장감과 갈등이 고조되는데 이 이야기가 거의 집 거실 공간에서만 이루어진다. 상당히 연극적이기도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많은 인물을 배치하는 방법이 아주 인상적이다. 집주인을 중심으로 수 명의 경찰, 집주인의 아내, 운전사,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아이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모두 집주인한테 유괴범이 원하는 걸 주라고 말할 권리가 없기에 말은 못하지만 도의적으로는 집주인이 마땅히 원하는 돈을 줘야한다는 암묵적 제스처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도덕은 승리를 하고 집주인의 파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재산을 유괴범한테 전달한다.

 

중반부는 유괴범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당시 요코하마 분위기가 묻어난다. 항구도시인 요코하마의 아름다운 풍광도 있지만 유괴범이 살던 비좁고 허름한 동네도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게다가 여름이라 숨막히는 더위가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인물들은 모두 땀에 흠뻑 젖어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장면이 등장한다. 수사과정 회의에서는 모두 런닝 차림이거나 편안한 복장인데도 부채질을 하거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쳐낸다. 이 회의 과정이 꽤 길게 묘사되는데 닫힌 공간에서 모두 대사로 이루어져서 지루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 반대로 아주 긴장감이 돌아 초집중하게 만든다. 인물들은 18세기 회화처럼 각기 다른 자세로 산만하면서도 한 곳을 바라보는 통일감이 있다.

유괴범을 추척하는 과정 또한 디테일한 장면들이 돋보인다.

 

도덕적 정의에 대한 아키라 감독의 시선과 세상의 양면적 시선을 볼 수 있다. 도덕적 정의란 성취되어야 하는 거지만 자본은 도덕적 정의를 무시하며 사람들 역시 도덕과 자본, 둘 다를 숭배하는 존재로 딜레마가 발생한다. 아무튼 명불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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