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을 열렬히 지지하게 된 때는 백상예술 대상에서 신인 감독상인가(정확하지 않음-.-). 아무튼 신인감독 상을 받은 후 수상소감을 말한 걸 들은 후였다. 영화판이란 모든 게 불명확하기로 유명해서 심지가 곧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들었다. 충무로를 전전하면서 하루에 한 씬씩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고 했다고 한다. <범죄의 죄구성>이 서른 번 정도 고친 시나리오라고.(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서른 번을 고칠 수 있는 인내심과 성실함에 나는 완전히 반했다. 인내와 성실은 내게 없는 덕목이기에, 이런 사람을 보면, 나는 파블로프의 개가 돼버린다.
성실과 인내가 만들어낸 영화들은 다들 훌륭했다. 점점 상업영화로 가고 있긴 하지만 <도둑들>처럼 잘 만든 상업영화라면, 역시나 열렬히 지지해 주고 싶다. 초호화 캐스팅에 정말 궁금했다. 보고나니 최동훈 감독은 캐릭터를 창조해서 조종하는데는 천부적 재능이 있다. 다른 배우들이야 워낙 연기력이 검증 되신 분들인데 전지현은 배우라기 보다는 모델같은 느낌이어서 소모품같았는데 이 영화에서 배우로 태어났다. 고양이같은 나른한 말투와 여유있는 몸 동작까지, 진짜로 줄타는 도둑이 아닐까, 할정도다.
시각적으로 복고풍같은 정통 장르영화인데 왜 새롭게 여겨질까. 생각해보니 배경 때문이다. 사실 이런 서사나 액션 씬들은 새롭진 않다. 익숙한데 전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한국영화란 사실 때문인 거 같다. 뉴욕이나 엘에이의 마천루에서 벌어지는 일이 부산의 한 허름한 건물을 배경으로 일어난다. 추격 장면에서 나는 인물의 얼굴보다는 인물이 내려다 보는 거리를 더 열심히 봤던 거 같다. 파란, 주황 등 원색 지붕과 시멘트 벽들을 보면서 어떻게 찍었을까를 상상해봤다. 홍콩이나 마카오, 부산의 공간 역시 다 비슷한데 80,90년대 홍콩 누아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골목과 건물 입구, 건물 안 풍경이 묘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해서 아주 열심히 봤다.
볼거리가 많아지면 영화는 언제나 이야기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그걸 극복해 보려고 러브라인 여러 개를 심어놨는데 김혜수의 오버 연기가 조금 거슬렸다. 왜 도둑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선(그런게 있나?)을 넘어선 느낌이랄까. 도둑은 도둑의 것을 훔치기도 해서 도둑 간의 연대는 비누방울처럼 금방 터질 수 있는 설정이 대체적인데 참 도둑스러우면서도 한국 현실을 얼핏 볼 수 있기도. <타자>에서도 자신 외에는 아무 안 믿는데 <도둑들>에서도 자신만을 믿지 동료는 믿지마라. 돈을 훔친다기 보다는 자존심을 훔치는 대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