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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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솔직히 재밌지는 않다. 재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가끔 웃기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이런 감정이 한 번이라고 들어야한다고 하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각오'가 필요하다. 책장을 중간에 덮지 않겠다는-.-; 취미삼아 읽는 글에 왜 각오까지 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이따금씩 들추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자신도 불평했듯이 퇴고할 시간이 없어서 소설이 지녀야할 구성이나 줄거리의 아귀가 잘 맞질 않지만 글 줄에는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때론 시론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러시아 분위기만이 아니라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세계라면 있을 법한 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이 있다. 이 시선은 보편적인데 글의 어조는 상당히 격앙되어 있다. 나는 이 격앙된 어조에 관심이 많다. 천칭자리답지 않게 글의 템포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한다. 이 소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노름꾼이다. 노름꾼은 현대 사회에서 사회악으로 정의된다. 도스토예프스키 시절, 노름은 꽤 일반적인 유흥처럼 보인다. 주로 룰렛이 등장하는데 이 돌아가는 바퀴에 미치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그 이유를 현대 의학은, 화학물질이 뇌에서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화학물질 분비 이전에 인간의 심리에서 일어나는 아주 충동적이고 급격한 변덕이 많은 예술가들을 괴롭혔다. 도스토예프스키도 노름꾼이었다. 아내한테 안 가기로 하루는 약속해 놓고 아내가 못 가게하면 심하게 욕하면서 다시 가고, 돈을 잃고 돌아와 무릅 꿇고 앉아 자신의 잘못을 빌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아마도 이런 자신의 감정적 경험에서 쓴 소설인 듯한데 내가 찾아 헤매는 광적 몰입의 근원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런데 나는 빨간색이 연이어 일곱 번씩이나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 일부러 빨간색을 물고 늘어졌다. 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자존심도 절반쯤 작용했다고 보는데, 정말이지 나는 앞뒤 가리지 않는 모험으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아, 이상한 느낌이다-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전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는데도 별안간 모험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를 사로 잡아 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영혼은 수많은 느낌들을 거쳐 왔으면서도 그것들에 의해 충만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만을 받은 채 완전히 진이 빠질 때까지 더 많은 느낌들, 더욱더 강렬한 느낌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206-207)

 

노름꾼한테 중요한 건 게임에서 이겨서 돈을 따는 게 아니다. 초반에 그런 사람이 나온다. 배팅한 돈의 몇 배를 따면 그만하고 일어서는 사람을 묘사하는데 도박장에서는 신기한 인물로 비춰진다. 진정한 노름꾼은 배팅을 하고 배팅한 돈의 수 십배를 따도 계속 배팅하는 거다. 물론 한 번에 딴 돈을 다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노름꾼의 숙명은 끝장을 보는 거다. 끝 혹은 절대 닿을 수 없는 무한으로 향해 가는 동안 일어나는 극도의 긴장감이 노름꾼이 원하는 대상이다.

 

이야기 중에 노름꾼이 아닌 부자 할머니가 나온다. 사람들은 위풍당당한 할머니한테 굽실거린다. 할머니눈 재미삼아 룰렛을 하다가 만 하루 만에 상당한 재산을 탕진한다. 만 하루 만에 할머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바뀐다. 그러나 할머니는 후회하지 않는다. 평생 살아왔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다녀온 댓가이므로. 화자 역시 거액을 따서 파리로 가지만 도박에서 얻은 거액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역시나 거액을 탕진하고 다시 한 번 거액을 따도 의미없이 탕진할 거라고 확신한다.

현대인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재테크나 은퇴 설계는 노름꾼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노름꾼은 현실에서 멀리 달아나는 지독한 낭만주의자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나는, 가끔, 현대인의 덕목을 무시하고 노름꾼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불안정한 문체들을 계속 찾아 읽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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