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이 서가에 있는 게 아니라 의자 속에 둥글게 말려 있거나 어딘가 구석에 들어있는데 소방수들의 손놀림이 빠르게 책들을 찾아내 한 곳에 모은다. 책들이 작은 무더기를 이루자 화염이 화-악하고 일어나고 책들은 불길 속에서 까맣게 변해가는 오프닝 시퀀스.

 

때는 미래 어느 때 쯤. 소방수 몬태그의 집 거실에서 그의 아내는 벽에 걸린 큰 텔레비전을 보며 텔레비전 속 인물과 대화를 한다. 스크린 속 인물들이 가족이며 친척인 시대다. 66년 작인데 2012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영화 속에서 책을 금기시하는 시대로 설정한 것 만 조금 다를 뿐. 책은 반사회적 사고를 만든다는 게 이유다. 몬태그는 숨겨 놓은 책을 잘 찾아내는 재능이 있어 동료와 후배들한테 숨긴 책 찾기 강의를 할 정도로 체제 순응자였다. 그러다 집에 가는 모노 레일 안에서 책을 읽는 교사를 만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꼬인다. 아무 생각 없이 충실히 수행해 오던 일에 회의를 품게 되고 상상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순응자가 반항자로 변하는 힘의 원동력은 책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금지하는 법이 내려진 미래 사회다.

 

중세와 같은 암흑기에도 늘 희망은 존재 해 왔듯이, 살벌한 사회에서 책을 지키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때로 예수처럼 핍박 박기도 하고 책과 함께 분신을 택하는 이도 있다. 재밌는 건 "책인 사람들 마을"이 등장한다. 책을 통째로 암기해서 그 사람 자체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도 되고 플라톤의 <국가>도 되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낭송해준다. 아주 낭만적이다.ㅎ 몬태그도 책인 사람들 마을에서 살아간다.

 

2012년은 누가 책을 소유하는 걸 금지하지 않아도 분서하지 않아도 책에 손을 뻗는 일은 큰 마음을 먹어야한다. 거리와 미디어는 몸짱 만들기를 마구 강요하고 있다. 골목마다 PT, 핫요가가 광풍을 일으키며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라고 한다. 지나친 열량 소비와 지나치게 적은 열량 소모 사이에 출현한 현대인의 체지방 과다를 비상사태로 몰아간다. 적절한 살집도 재난인양 외쳐대는 미디어와 현실 속 사람들은 우물쭈물하며 끌려간다. 쓸데 없는 정보들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일도 수월하지 않다. 버스는 성형외과 광고를 달고 서울 시내를 달린다. 눈 앞에 보이는 거 라고는 온통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문자들 뿐이다. 책을 권하는 문자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책을 읽는다면 이런 외모 지상주의 트랜드에 반기를 들 용기가 생길텐데.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텔레비전 쇼 프로에서 책인 사람들 마을 사람들처럼 책 암송 대회를 개최하는 거다. 누가 누가 암송을 잘 하며 몇 권을 암송하고 있는 지 경쟁을 한다며 사람들은 분명히 책을 또 미친듯이 암송해서 성형과 PT 따위는 잊고 책을 가까이 할텐데. 누가 얼마나 다독을 했는지 부러워하며 순위를 매기며 경쟁을 부추기겠지만 지금 트렌드보다는, 적어도 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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