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에 관한 주제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기 때문일까,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수도 없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간단하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에서 게르트루드라는 여인의 이야기다. 게르트루드는 사랑이 전부라고 믿으며 남편(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믿는다. 운명은 예정되어 있다는 보수적 사회에서 운명은 개척하는 거라는 신념을 지켜내는 여인이 네 명의 남자와의 사랑을 통해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게르트루드가 남편한테 공허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다면서 시작한다. 남편은 잘 나가는 변호사며 수상이 되려는 무렵이다. 아내의 선언에 남편은, 황망해한다. 남편의 관심은 게르트루드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지이다. 남편은 아주 현실적 인물이며 현재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 다른 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이해하려들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게르트루드가 현재 사랑하는 젊은 음악가다. 이 젊은이는 예술가답게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밤 문화를 즐긴다. 게르트루드는 그의 충동적 기질을 포옹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맞춰 줄 것을 요구한다. 젊은이는 결정적 순간에 게르트루드를 사랑한 적이 없노라고 말한다. 젊은이한테 게르트루드는 계급이 다른 여인에 대한 스쳐지나가는 호기심 대상이었고다. 게르트루드는 자신의 사랑이 젊은이를 구속할 수 없는 걸 알게 된다.
게르트루드가 결혼 전 사랑을 알게 해 준 이는 현재 남편의 친구다. 그 사랑을 떠난 이유는 남자가 일이 바빠지면서 게르트루드를 버거워했기 때문이다. 게르트루드는 남자한테 일이며 우주이길 원했지만 남자한테 게르트루드는 현실적 존재였다.
게르트루드가 세 남자를 사랑하면서 원한 건 한 가지였다. 그녀가 남자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었다. 사랑은 다소 관념적이고 정념적이지만 현실에서 사랑은 관념적일 수 없고 이상적일 수는 더더욱 없다. 게르트루드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아를 찾아 혼자 늙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게르트루가 파리에 가도록 도와준 교수가 등장한다. 게르트루드의 집은 소박하게 꾸며져있고 책상에 앉아 있다. 교수가 자신이 출판한 책을 가지고 와서 묻는다. 뭘 하면서 지내는지. 청소를 하고 속옷을 빨고 다림질을 하면서 보낸다고. 교수와의 친분이 30,40년이 돼 가고 교수는 이따금씩 편지를 보냈지만 게르트루드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어느새 나이가 들어 만나 죽음을 이야기한다. 게르트루드는 자신의 묘비에 새길 말은 '사랑은 모든 것'이며 아네모네를 심어달라고 했다고. 말한 적 없는 사랑이 무덤가에 와서 아네모네를 보며 자신의 사랑을 기억해준다면, 그게 사랑이라고. 이 노교수에 대한 사랑을 이상적으로 지키기위해 게르트루드는 우정이란 겉모습을 유지했다. 사랑의 완성은 이별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교수의 마지막 방문도 서둘러 배웅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는 여인을 보면서 대단한 여인이란 생각이;;; 자신의 신념을 현실에서 지켜내기 위해 고독함을 택했다. 이상을 이상으로 지켜내려면 현실의 쾌락을 희생해야하느니...... 권위적 사회 질서 속에서 게르트루드가 보여준 강인한 주체 의식에 찬사를 보내긴 하지만 꼭 그렇게 이상을 지켜야하나...현실과 타협을 좀 할 순 없나, 하는 꼼수가 떠오르기도.
2. 사실 극의 흐름만 본다면 아침 드라마 줄거리다. 현재 남편이 있고 젊은 애인이 있고 뒤이어 과거 애인까지 등장한다. 막장에 가까운 흐름인데 이 영화는 막장이 아니라 예술이다. 프레임을 구성이 거의 회화처럼 이루어진다. 대화로 극이 진행되는데 게르트루드와 남자가 대화를 할 때 두 사람은 마주 보지 않고 허공을 응시한다. 어떤 표정도 없이 목소리에 감정의 무게가 실린다. 덴마크어를 모르지만 어떤 어조인지는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묘미는 대사가 일상어가 아닌 함축어로 이루어진 점이다. 가령 과거 애인이 함께 떠나자고 할 때 대사는 이렇다. "One should be the two. We should be one." 그러자 게르트루드가 "We should be the two. But we should be one."한국말로 옮기면 좀 많이 낯 간지러운데 이런 언어 유희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큰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