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미치광이 사랑>을 두 편 봤다. 한 편은 자크 리베트가 감독한 255분짜리! 또 한 편은 피에르 소렌톤이 감독한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프랑스인들은 fou란 단어를 애용하는 듯. 고다르 영화에도 <미치광이 피에로Pierrot le fou>가 있다. 한 달에 제목이 같은 영화를 두 편 보고 나니 불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들여다 보게 된다. 우리말로는 미친으로만 번역되는 fou는 영어 mad나 insane의 의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fou는 말 그대로 미친에서 부터 열정적인, 분별없는, 멍청이, 요즘 감탄사로 대박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의미다. 두 영화 속 인물들 모두 어딘가에 정신이 나가있다. 자크 리베트 영화는 사랑에 미친 여자가 나와서 광기로 보이는 행동을 한다. 연출가로 나오는 남자는 라신의 <앙드로마크>를 연출하는데 열정적이다.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는 이브 생 로랑이 애정했던 집, 그림 콜렉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물관 같은 집을 만들면서 이브 생 로랑이 지녔던 광기와 열정이 공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미치광이 사랑>은 3주간에 일어난 두 가지 이야기가 각각 전개된다. 하나는 연출가인 남자가 라신느의 비극을 연습하는 과정을 담으며 배우와 감독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관객과 공유한다. 그러나 보면서 그런 고민은 좀 혼자 하시지, 하는 생각으로 살짝 괴로운 시간이었다. 리베트의 견해로 연출가는 그저 상황을 담는 사람이다. 그래서 리허설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영화 속 영화로 담아낸다. 라신느의 언어는 아주 난해해서 그 해석에 관객으로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면 라신느의 극에 대한 기본 감성이 선행되야하는데 감독은 관객의 수준을 너무 높이 보신 듯. 라신느를 누가 읽겠는가. 어떤 비평가 말대로 라신느는 프랑스 국민도 접근하기 어려운 작가고 외국인한테는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작가다.

 

4시간에 달하는 상영 시간동안을 버텨 낼 수 있는 건 라신느의 극 외에 한 커플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덕분이다. 연출자의 아내인 클레르는 연극에서 배제된 후 남자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광기를 보인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거리 소음, 광경 등을 녹음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여자가 배우에서 자신을 삶을 연출하는 연출가로 역할로 이동하면서 남자와 결별을 하고 싶어한다. 남자는 연극도 그렇고 실제 생활도 그렇고 어떻게 해서든 극을 완성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한다. 연출가로서 배우, 그러니까 아내의 광기에 맞춰주는 꽤 긴 시퀀스가 이어진다. 침실에 익숙한 벽지를 뜯어내고 벽을 허물고 텔레비전을 도끼로 부수는 과정이 의아하면서도 실감나게 담긴다. 리베트 감독은 이 장면을 두 배우한테만 맡기고 계속 그들이 하는 대로 두고 카메라에 담기만했다고 한다. 아무튼 두 인물의 광기어린 행동을 지켜보는데는 인내심이 좀 필요하다. 감독이 되는 인내보다는 관객이 누리는 가벼운 즐거움이 더 좋다;;;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는 이브 생 로랑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은퇴를 선언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이브 생 로랑의 불안한 정신적 삶을,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가 기억을 통해 주로 서술된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미적 환영이 필요하다"는 피에르의 말대로 이브 생 로랑은 비가시적인 생각에서 가시적 창조물을 만드는 창작자로서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물리적 도구들이 필요했다. 술과 마약, 세 채의 집과 미술 콜렉션들. 파리의 집은 작은 미술관과 같았고 마라케시에 있는 집은 이국적인 영감의 원천이었고 외진 노르망디에 있는 집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인물들에게 바쳤다. ( 각 방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붙였다)

 

이 영화는 유명인 이브 생 로랑이 아니라 자연인 이브 생 로랑의 삶을 조명한다. 그의 명성 뒤에서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한 번의 오뜨꾸뛰르를 여는데 드로잉만 4만 장을 했다고 한다. 얼마나 성실히 일했는지 가늠이 가는 수치일 뿐 아니라 같은 머리로 매번 다른 생각을 해내야하는 걸 요구하는 우리는 잔인하기도 하다. 가까이서 지켜 본 피에르도 디자이너의 삶을, 경탄한다. 사람이 그 무리한 일을 감당하려면 신의 보호가 있어야한다고. 이브 생 로랑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창작과 새로움에 대한 무한한 열정은 숙연하고 존경할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