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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길을 잘 찾는 남자가 있다. 그가 어느날 길을 잃는다. 인생에서도 숲에서도.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아내와는 이혼을 하고, 생식 능력은 없는 남자. 그는 자신의 것이라고는 쌓으면 이십삼 센티미터 높이인 책들 밖에 없다. 십삼 년동안 졸음을 참아가며 책상 앞에 앉아 쥐어짠 결과물은 물리적 수치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남자는 길을 잃기로 작정해 본다. 미국에서 운전 기사, 건축 현장 잡일꾼, 정글 가이드 등 일용직을 해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몫의 문제가 있다. 정글을 1시간 동안 둘러보는 관광인들조차도 숨겨진 일상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 그는 거대한 숲으로 들어간다. 동물과 바람과 햇빛, 풀과 나무, 호수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인간의 나약함을 직시하기 위해서. 자연 속에서 남자는 한 마리의 짐승보다도 더 나을 게 없다. 조그만 상처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일용할 양식을 구할 방법도 모른 채,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걷는 일 뿐이다. 지도도 무용지물이다. 남자의 지도 읽기 능력은 인간이 만든 유형물을 읽어낼 때나 유익하다. 13일 간 살아 나온 사람이 없다는 숲을 헤매며 살아난 남자는, 일상이라는 행복에 잘 다다른다.
장 폴 뒤부아의 글을 나는 좋아한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바라보는 유머러스한 시각도 좋고 깊이도 좋다. "인생은 무수한 평범한 일과 아주 가끔 그럴듯한 일로 이우러져있다"는데(로알드 달님 왈) 우리는 대부분 평범한 일을 들여다 보는 재주가 없어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다른 이의 일상을 블로그로 읽는다. 장 폴 뒤부아는 아주 작은 일을 확장해서 그려내는 일을 잘 해서 타고난 이야기꾼 측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문장들을 하나 하나 쌓아 사이를 정성스럽게 메꾸는 진 빠지는 일을 한다고 쓴다. 이야기 서술이 일인칭으로 되어 있어 허무를 느끼는 남자한테 몹시 감정 이입이 든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싶은 욕구나 에너지로 충만한 사람을 만나면 내 역할은 부러워하는 거다. 나이 드는 게 별게 아니라 욕구가 없어지는 게 아닌 가 싶다. 나도 남자처럼 숲에라도 들어 갔다 나오면 다시 원기를 회복해서 나오려나.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