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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페미니즘 - 무슬림 여성학자가 밝히는 포스트모던 분석의 한계
하이다 모기시 지음, 문은영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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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젠더 정치학의 기본도 모른다고 비난받겠지만 나는 젠더 정치학이 싫다. 젠더에 기반을 두는 게 이미 젠더의 차별을 인정하며 두드러지게 하는 게 아닌가. 최근에는 페미니즘이 그 한계를 인식하고 영역을 확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젠더에 기반을 둔 게 나는 싫다. 어린 아이가 아니니 싫다고 하려면 무슨 근거가 있어야하니 가끔 젠더 정치학에 관한 글을 읽는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슬람과 페미니즘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무슬림 디아스포라인 저자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이슬람의 이미지는 서구에서 만든 것이다. 이슬람 사회를 직접 겪어볼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도 있지만 적극적인 정보를 찾지도 않는다. 그만큼 이슬람은 멀기도 하단 말이다. 기독교 사회라고 지칭하지 않지면 이슬람하면 하나로 묶이는 이미지가 있다. 기독교가 하나의 성서를 기반으로 하지만 여러 문화가 있듯이 이슬람도 코란(이 책에서는 꾸란이라고 표기했다)을 기반으로 각 국가가 처한 지리적, 사회적 상황에 맞춰져 다양한 문화를 형성했다고, 한다. 다양한 문화를 하나의 범주에 묶어버리는 게 얼마나 오류가 많은 지 모르지 않는다.
이슬람권 여자들하면 히잡이 대표적 상징이다. 모든 곳에서 히잡을 입는 게 아니지만 우리는 대체로 히잡을 떠올린다. 성별을 떠나 복장을 규제당하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학창시절에 두발 자유화 1세대, 사복 1세대를 보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사복 1세대 답게 우리는 청바지를 주로 입고 다녔다. 가정선생님은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만이라도 치마를 입도록 명령했다. 왜 불편한 치마를 입어야하나 했지만 선생님과 맞장뜰 배짱은 없었다. 그래서 바지를 입고 등교하고 가정시간에만 치마를 가져가서 바지를 종아리까지 걷고 바지 위에 치마를 입었다. 이렇게 몇 주 가정선생님 눈을 속였지만 어느 재수없는 토요일이었다. 바지 걷은 게 내려와 선생님 레이더에 걸렸다. 선생님은 버럭 화를 냈지만 대신 그 다음주부터 의무적 치마 착용은 사라졌다. 만약 짧은 치마를 규제했다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규제란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니까. 아무튼 히잡만큼은 아니어도 지금 생각하면 꽤나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러면 히잡을 철폐해야하나, 그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괄적 철폐 역시 규제와 마찬가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포용범위가 여기서 등장한다. 그대로 내버려두는 범위 자체가 고민을 요하는 사항이다.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를 저자는 지적한다. 근대가 부재한 사회에 다양성 수용의 이름으로 전근대를 인정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한다.
이 저자의 글을 이슬람 사회에서 특히 여성의 위치를 고찰하고 있지만 많은 생각거리와 고민을 안겨준다. 다양성의 범위와 수용 방법에서 하나의 옳은 방법은 없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길만이 옳다. 기존의 이미지를 의심해 보는데서 출발할 수 있겠다. 이슬람 문화권만이 아니라 삶의 큰 테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