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어떤 책도 흥미를 끌지 못한 채 두어 달이 지났다. 변명을 좀 하자면 나이가 드는지, 시름시름 앓다보니까 앉아서 책장을 넘기는 것도 힘들었다. 그저 눕고만 싶고 때마침 재밌는 책도 눈에 안 들어온다. 신간 정보나 블로그 마실을 다니다 책을 찜 해 놓는 일도 귀찮았다. 이러다 영영 책을 못 읽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슬금슬금 자라기 시작하고 있는 와중에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경로로 이 책을 알게 됐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아무튼 행운이다.  

<현대 세계의 일상성>으로 알고 있는 앙리 르페브르의 제자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은 잡지 르포같다. 페렉은 정작 자신의 글에서 사회학의 그림자를 보는데 반대했다고 하는데 독자한테 풍부한 상상력보다는 일상의 비루함 혹은 표류하는 68세대를 들여다보게 한다. 배경은 60년대로 영화 <몽상가>를 상기시킨다. 68세대가 갈망했던 자유, 그리고 이어지는 공허는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활자화되어 있다. 혁명 후 자유의 실체가 뭔지 헛갈리는 상황 속에서 물리적 삶은 풍요로워진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게 자유고 젊음이라고 점점 착각하게 되고 젊음은 점점 헐벗고 누추해진다. 물질로 보장되지 않는 자유는 의미없어 보인다. 실은 물질이 자유를 담보로 잡고 있는데도.  

젊음이 내뿜는 치기와 객기는 인간 세계에서 단절을 만들고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도 막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소비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주인공들은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의 노예가 되어간다. 주인공들은 블랙홀 같은 구매욕을 지니게 되고 구매욕을 채울 수 없어 무기력하다. 주인공들의 허무와 무기력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알제리의 한 소도시에서 그들의 무기력은 절정에 이른다. "그들의 삶은 마치 고요한 권태처럼 아주 길어진 습관 같았다. 아무것도 없지 않은 삶."젊음이 사그라드는 걸 읽으면서 내 젊음도 그렇게 소진되었었지하는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비가 한창 내릴 때 읽었는데 처참함은 눅눅한 물리적 환경 탓이라도 할 수 있어서 위안 아닌 위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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