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베러월드 - In a Better Worl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는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미지화 해 놓은 것 같다. 정의의 딜레마에 관한 성찰을 유도한다. 영화는 두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내전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사로 일하는 남자는 폭력에는 비폭력과 이해로 대한다는 신념을 지녔다. 어느 날, 내전의 주범인 살인마가 다리 부상으로 의사한테 도움을 요청한다. 의사는 그의 목숨을 구했지만 살인마의 악한 본성에 질려 그가 사람들한테 죽도록 폭력을 방관한다. 살인마가 살아나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게될 것이다. 그가 신념을 지키는 게 옳은 지 잠시 신념 따위는 잊는 게 좋은 지 혼동스럽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이 지닌 사고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한 걸음 나아가 노력했다. 그는 누가 봐도 훌륭했다.

그의 아들 엘리아스와 엘리아스의 친구 크리스티안의 세상을 보는 눈이 또 하나의 이야기다. 크리스티안은 엄마를 잃은 상처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을 신념으로 가지기 시작한다. 폭력에는 사랑과 이해가 아니라 더 큰 폭력으로 기선을 제압한다, 가 크리스타안의 세계관이다. 이 어린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왜 이런 폭력을 신봉하며,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 결과를 알려줄 어른이 없다. 반면 엘리아스한테는 폭력은 단지 하찮은 이들의 방어수단일 뿐이라고 알려주는 아빠가 있다. 엘리아스는 폭력에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적어도 고민을 하고, 뭐가 옳을 지 생각해 본다. 이런 장면을 볼 때,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어른 역시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은 폭력에 대한 보복의 결과를 혹독하게 겪었고 엘리아스 아빠의 도움으로 폭력의 순환 고리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끈을 잡았다.

영화는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고 탄탄하게 끌어간다. 언제가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좋은 엄마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했다. 이 말에 웃고 말았지만 아이의 길을 이끌어야하는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그저 먼저 태어나서 축낸 밥 그릇의 숫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나 상황에 대해 자신만을 대처법을 구축해나간다. 대처법이 옳고 그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태초에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었듯이, 어린 시절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은 없고 어른 세계를 보고 모방하면서 선과 악을 학습한다. 선도 학습되지만 악도 학습된다. 어른 역시 무언가를 보고 선과 악을 학습했을 거고 여전히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알게 모르게 내 행동이 모방되어 더 좋은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도 있고 더 나쁜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을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