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개 - Poongs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사전 정보 없이 포스터만 보고 김기덕 감독 영화인 줄 알았다가 영화가 시작하면서 각본만 쓰고 감독은 다른 사람인 걸 알았다. 또 김민선이란 배우가 이름을 바꿔서 김규리가 되었다. 얼굴은 같은데 이름이 달라진 배우가 출연한다. 영화 외적으로 이렇게 좀 헷갈리는 요소들이 있는데 영화 내적으로도 착각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  

2.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영화 미학적인 것과 별개로 감독의 정신 세계는 악만을 들여다본다. 세상에는, 사람한테는 악만 있는 게 아니라 선도 공존하는데 김기덕 감독은 왜 유독 악에만 집착하는 걸까. 선을 간직한 인물은 언제나 소외되고 앞으로 나서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위기의 순간에는 영웅으로 돌변한다. 영웅으로 나서는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 대체로 한 여자에 대한 순정 때문인데 이 순정이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섬뜩하다. 사랑, 혹은 순정이라고 부를 만한 행위들한테는 사회적 기호가 녹아있지 않다. 이 말은 사랑이나 순정하면 떠올릴 수 있는 보편성이 없다는 말이다. 김기덕 감독이 만들어낸 인물들 속에는 보편성이 없어 공감이 안 되고 당혹스럽고 때때로 불쾌하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이유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위기의 순간에 영웅으로 변하는 인물이 언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말은 사회적 보편성을 대표하는 기호체계다. 사회적 보편성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단순히 감독의 아킬레스 건일지도 모른다. <그랑 블루>를 만든 뤽 베송이 학창시절 작문을 못한 게 트라우마로 남아 대사에 자신이 없어 인물들이 대체로 침묵하는 것처럼. 

3. 엄밀히 말하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아닌데도 김기덕 감독 영화로 다가온다. 김기덕 표 기시감이 많이 있다.'풍산'이란 닉네임을 가진 남자 역시 영화 내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한 마디 비명은 지른다. 게다가 풍산이란 남자가  인옥한테 바치는 순정 역시 익숙하다. 풍산은 홍길동처럼 남과 북으로 헤어져서 살고 있는 가족들의 한을 풀어준다. 김기덕 감독식 영웅주의다.  

그러나 풍산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이 영화에서 말이란 도구는 믿을 게 못 되고 상황에 따라 쉽게 번복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을 하는 데 말에 대한 신뢰성이 문제가 된다. 말이 행동보다 우선시하는 게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작위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가장 공감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액션 씬이나 잔인한 장면(피가 얼굴에서 여러 가닥으로 흘러내린다)은 상업영화로서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진지한 상황에서 웃기기까지 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기덕 감독이 연출했다면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가지 않았을 거 같다.   

4. 누군가는 개연성을 따지는데 개연성 없는 영화를 꼽자면 수도 없다. 영화가 꼭 사실에 기반을 둘 필요가 없다. 사실을 소재만을 제공할 뿐이고 그 소재를 변형시키고 가공시키는 게 영화가 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참 영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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