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 Late Autum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게 만추는 기대되는 영화기보다는 재밌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다가왔다. 그 이유는,

첫째, 현빈은 얼마 전 끝났던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이란 인물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영화 예고편을 봤을 때 김주원을 자동적으로 떠올렸다. 영화를 보면서도 김주원의 말투가 떠올라 방해가 됐다.;;; 이 시계는 당신이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시계가 아니야...이태리 장인이 블라블라...;;

둘째, 김수용감독이 만든 81년작 만추에 대한 이미지다. TV에서 방영했을 때 봤는데 오래 전이라 내용은 어렴풋하지만 이미지만은 고스란이 남아있다. 밖은 어두웠고 차창에 비친 김혜자의 초점없는 시선.  마음에 깊은 구멍이 있는 사람이 어떤지 말해주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아냈던 장면들. 바람소리와 더불어 바람의 세기를 알려주는 낙엽들의 뒤척임. 화면 앞에 있던 낙엽이 저 멀리 날아가는 장면들은 스산함으로 오슬오슬 소름이 돋게 했다. 지금도 김혜자의 시선을 생각하면 서늘해진다. 

이런 배경(?)을 갖고 영화를 봤다. 

이 영화에서 커다란 조연은 안개다. 첫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 모두 감옥의 견고한 담벼락으로 시작한다. 담 밖을 둘러싸고 있는 건 두터운 안개다. 뿌연 시야는 두 사람의 막막한 앞날같기만 하다. 두 사람의 과거가 안개과 함께 가려졌다  볕과 바람 속에서 조금씩 그 자락들이 드러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 때문에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다. 누구나 밤새워 말할 억울한 혹은 무용담쯤 하나씩 가지고 있다. 주목받을 만한 이야기와 술자리용 이야기의 차이는 서술방법과 화자의 태도에 있다. 우리가 사람을 사귀는 원리랑 같다. 누구든 한 번 만남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만날 때마다 나누는 이야기와 사소한 행동과 반응을 조금씩 수집해서 뇌에 저장해 패턴화한다. 한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건 바로 뇌 속에 든 사소한 정보를 많이 수집해놨다는 말이다. 좋은 서사는 사람을 사귀는 원리처럼 이야기를 풀어간다. 쫓기는 듯한 훈, 거울 보며 머리를 쓸어올리는 행동 , 전화받는 태도등을 보면서 관객은 훈의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그러나 훈의 캐릭터는 처음 등장과 달리 좀 아쉬운 점이 있다. 훈이 더 건들거렸으면 좋았을걸...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에 왔을테지만 몸을 판다. 마음까지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파는 절박함보다는 샌님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는, 배우 탓이라기 보다는 김태용 감독 탓일거다. 김태용 감독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셨다. 실제로 남자 배우를 극단까지 몰고 나갈 수 없는 감수성이란 말도 되겠다. 김수용 감독 영화에서 봤던 쫓기던 정동환의 절박함을 기억하던 관객한테 훈은 너무 부드럽다. 뭐 많은 여자 관객들이 김태용 감독의 이런 부드러움에 열광하지만. 

훈에 비하면 애나는 좀 더 근사했다. 단 말하지 않을 때. 난 탕웨이의 말투가 싫다. 말할 때 목소리에서 어떤 단호함이 비춰진다. <색, 계>에서도 그랬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 단호한 말투가 파리한 표정을 깎아내린다. 말하지 않을 때 지치고 의욕없는 얼굴은 근사하다.  


배우들의 깊이 탐구보다는 적당히 긍정적이서 좋기도 하지만 서운한 점도 이렇게 많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김태용 감독의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호퍼의 그림처럼 휴게소에 앉아 훈을 기다라는 애나의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화면 밖에서 나는 소리로 다른 사람들이 오고가는 걸 알 수 있다. 애나는 문소리가 날 때마다 훈인지 살피고 문을 볼 수 없는 관객은 애나의 얼굴을 살핀다. 애나의 얼굴에는 조금의 실망과 많은 희망이 묻어난다. 빈 앞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데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데....이 열린 결말은 훈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절망보다는 영화가 끝난 후에라도 두 사람이 만날 거란 묘한 기대를 준다. 극장 밖으로 나서니 바람도 따뜻하고..<만추>였지만 봄을 기다리는 계절에도 썩 잘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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