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게 생긴 일
채영주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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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생긴 버릇은, 책을 끝까지 다 안 읽고 리뷰를 쓴다. 뭐, (대체로) 혼자 끄적이고 혼자 보는 거라 별 큰 차이는 없지만 완독에 대한 의지가 희미한 데 대한 화가 난다고나, 할까.-.-; 

소설은, 인문학 책들이 옳은 말만을 줄줄이 쏟아내는 만큼 무기력하다. 꿉꿉해서 창문을 열고 바람을 청하기 보다는 전기를 잡아먹고 시치미떼는 에어컨의 인공적 상쾌함이 땡길 때, 소설은 사계절 중, 그 어느 때보다도 무기력해보인다. 소설 속의 비극이나 희극에 울고 웃는 게 에어컨이 내보내는 일시적 쾌적함에 굴복하는 것처럼 수치스럽고 절망적이다. 채영주의 소설집을 두 권 째 접하면서 갖게 되는 삐딱함이다.  

과연 한낱 허구의(현실을 파편화해서 재구성했을지라도)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지 삶이 될 수 없다. 진짜 삶은, 꿉꿉함을 온몸으로 느끼기며 내 몸에 내 손이 닿았을 때조차 싫은 걸 참아내야한다. 소설은, 타자의 꿉꿉함은 물론이고 내 꿉꿉함도 일종의 관조와 관음으로 즐길 수 있는데 오늘은, 날씨 때문인지 저조한 내 바이오 리듬 때문인지 관음과 관조가 즐거움이 아니라 혐오스럽다. 이번 주말에 극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지 못한 채 시간을 일에 고스란히 바친 화풀이쯤 되겠다.  

단편 속 주인공들은, 나른하고 주변을 서성이는 인물들이다. 익숙하면서도 화딱지가 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생각말고 행동하는 인물들은 왜 소설의 주인공으로 매력이 없나. 행동하는 주인공들은 추리소설이나 줄거리 중심의 소설에 등장하는데 나는 왜 이런 류의 소설에는 손을 안 대나. 일상의 복제품 같은 글을 나는 왜 읽고 있나. 이런 불만으로 가득 차서 나는 왜 책을 읽나..로 꼬리를 물고 잡념을 펼쳐놓는다.  

이게 다 장마 때문이다. 머리칼이 볼에 스칠 때마다 습하고 무언가에 휘둘리는 기분이..채영주 단편들의 인물이 만들어내는 감각이다. 이런 불쾌한 느낌을 책을 덮고 털어버릴까, 아니면 불쾌해도 끝까지 겪어야할까...시답잖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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