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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격 - 인간의 고뇌와 심층심리의 탐구를 시도한 작품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형규 옮김 / 누멘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난 좀 지루해하는 편인데 한 후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어서 좋다고 했다. 가령, <걸어도 걸어도>에서 잔잔한 대화가 이어지다 문득 욕실문을 열고 들어간 아들(가물가물;;)의 시선으로 본 타일이 클로즈 업된다. 쇼트와 쇼트 사이에서 파생되는 걸 난 캐내려고 분주하게 시각과 게으른 뇌세포를 채찍질하지만 결국 소득없이 무너지고 결국 눈을 꿈뻑이다 가끔 하품을 한다. 반면 후배는 사람의 행동은 비논리적인이서 문득 자신도 알 수 없는 걸 응시할 때가 종종 있어서 이런 타일 씬이 인간사와 닮아있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이중인격>은 이런 맥락에 있다. 억압된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충돌을 겪으면서 사회적 자아는 억압된 자아를 파렴치라고 여기면서도 내심 부러워한다. 내 이성은 하지 말라고 한 일을 억압된 자아는 버젓이 하고 즐기기까지 한다. 이성적 자아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럴 때, 가져야할 태도는 뭘까. 정답은 물론 없고 개체의 특성이니 인간사는 재밌어진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작이 번역되서 나왔다는 알림 메일이 왔고 제목은 아주 흥미로웠다. 누멘이란 출판사는 처음 듣는데 책 날개에 출간한 시리즈 목록을 보면 영성 및 신비주의 신서..뭐 이런 카테고리로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느낌은 참 묘했다. 아무튼 245페이지 밖에 안 되는 비교적 짧은 소설이지만 장편들만큼 읽기 만만치 않았다.
골랴드킨이란 인물이 내면의 자아와 대화하는, 환상 소설같기도 하고 또 괴기 소설 같기도 하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주인공의 환상인지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진행된다. 9등관인 주인공은 실제로는 소심하지만 주인공의 세포분열로 나타난 클론은 아주 사교적이고 교활하기도 하며 변덕스럽다. 세포복제를 제공한 원본은, 그 자체로 들뜨고 비이성적 인물이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충동적인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 복제 인간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마음껏 비난하고 비웃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