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글렌 굴드, 너무나 익숙하지만 바흐 전문 피아니스트로 고작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의 삶과 음악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는 연주가의 일생을 추구한 게 아니라 음악을 텍스트로 삼는 철학가로서 살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실체를 지니지도 못한, 우리가 음악이라 부르는 이것이 왜 우리를 감동시키고 그처럼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토론토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 했던 강연의 일부이다. 음악의 실체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그의 일생과 연주를 지배한다. 악보-연주자/피아노-손 이란 관계를 도식화하고 각 관계를 탐색한다. 손은 연주자의 일부이지만 연주를 하는 순간 손과 연주자는 별개로 각기 다른 역할을 한다. 그가 연주하는 장면을 유투브에서 찾아봤다. 그의 왼손은 오른손의 지배를 벗어나 건반 위에서 춤을 춘다. 건반 위에 있지 않을 때도 왼손은 혼자 공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악보에 대한 해석은 연주자의 머리를 필요로 하지만 건반을 두드리는 손은 더 이상 연주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관계.  

그의 청명한 연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준 건 저자 미셀 슈나이더다. 전기문이지만 에세이 자체로도 탁월하다. 글렌 굴드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한테도 애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미문들로 가득하다. 미셀 슈나이더가 본 굴드의 모습은 이랬다.

" 굴드는 악기의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했다. 헐벗은 연주. 악기가 미혹시킨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장식적인 기능을 삭제하게 된다. (....) 그는 음악의 몸이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를 원했다. 우리의 몸이 인위적인 장식을 박탈당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살덩이의 치욕 속 버려져 죽음으로 가듯이." (102)

굴드는 세상과의 단절을 필요로 했지만 그의 재능은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는 예정된 고통 속에서 살았고 그의 고통이 만들어낸 연주를 우리는 즐겼다. 그리고 저자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장으로 또 한번 굴드가 느꼈을 고통을 음미하는 잔인한 독서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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