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이 말을 걸다 - 골목이 품은 서울의 풍경
김대홍 지음, 조정래 사진 / 넥서스BOOKS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어른과 아이의 뇌 차이는 사물에 대한 인지 태도에 달려있다고 한다. 어른은 어떤 대상을 볼 때 자신의 경험과 인식 범위에서 해석하고는 아는 것으로 간주해서 특징을 범주화해버린다. 아이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 낯설고 새로운 자세로 주의를 집중하고 만지고 적극적으로 다가간다고 한다. 서울은 보잘것 없는 삭막한 도시로 분류하고는 서울을 떠날 궁리만 하다가 올해는 아이같은 시선으로 서울을 좀 들여다보자고 다짐했다.  

지난 주 일요일, 첫 출발로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시작해소 남산 산책로를 걸어서 필동으로 내려왔다. 덕분에 아직 종아리가 얼얼하다. 남산 북측 산책로 역시 공사중이었고! 필동은 개발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는 곳이었다. 한 때, 시나리오 작법 강의를 듣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 갔던 곳이기도 하고 고등학교와 대학 때는 대한극장과 명보극장, 지금은 없어진 스카라 극장엘 드나들곤 했던 곳이다.  

서울이 워낙 추억 만들기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학창시절에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기도 하고 걷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차를 이용하니까 거리에 나섰을 때 눈은 온통 차만 보는 혹사를 당한다. 따지고보면 현대문명이 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내 탓도 크다.  익숙한 길에 대한 정보가 차량통행량 변화 시간을 알고 막히지 않는 뒷길을 알고 있고 어느 차선으로 주행하면 옆 차선보다 조금 더 빨리 정체구간을 빠져나갈 수 있고..등등 내비게이션이 하는 정보로 머리 속이 가득 차 있다.

저자의 말대로 골목은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차에서 내려 두 발에 의지하는 순간 뇌는 내비게이션 같은 물리적 정보가 아니라 정서적 정보를 불러온다. 볕의 빛깔이 어떤 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그 길을 걸었는지..공간에 대한 기억은 결국 사람에 대한 기억라고 했다.  

저자가 자전거로 혹은 발로 찾은 골목은 시한부 생명을 갖고 있다. 개발과 재정비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첨단으로 바꾸려는 거대한 물결을 맞이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적 인물들의 얼이 배여있고 영화나 책 속에 녹아 있는 서울의 단면인데 무심코 지나쳤다. 이런 무심함이 서울을 공사지향적 도시로 만드는 데 한 몫하고 있는 거다. 골목이 사라지기 전에 한 번 가 봐야지, 마음만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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